
“그것은 설산처럼 하얀 머리를 지닌, 그 거대한 산처럼 불가해하고 무자비한 존재였다. 그 눈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깊이가 깃들어 있었고, 등에는 폭풍과 싸운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허먼 멜빌은 소설 ‘모비 딕’에서 여러 차례 포경선을 격침시키며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 된 거대한 흰 고래를 이렇게 묘사했다. 작품 속 모비 딕은 단순한 거대 고래가 아니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위대한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모비 딕의 모티브가 된 향유고래(sperm whale, Physeter macrocephalus)는 성체 무게가 20톤을 훌쩍 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이빨고래다. ‘향유(香油)’라는 이름은 ‘향이 나는 기름’을 뜻하며, 영어 이름의 ‘sperm’은 정자(精子)를 의미한다. 17세기 포경 선원들은 향유고래 머리에서 발견된 반고체 흰 기름 덩어리를 고래의 정액이라 오해해 이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
이 기름에 불을 붙이면 연기가 적고 오래 타 18~19세기 무렵 향유는 고급 양초의 재료로 각광받았다. 실제로 이 기름 덩어리의 정체는 온도에 따라 상태가 변하는 지방산 에스테르로, 고래가 잠수하거나 소리를 낼 때 부력을 조절하거나 음향을 제어하는 기능을 한다. 향유고래 머리의 약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경랍기관(spermaceti)은 음파를 증폭하거나 방향과 부력을 조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기관을 가득 채운 기름의 온도를 낮춰 밀도를 높이면 단단해지고, 온도를 올리면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심해로 하강하거나 수면으로 부상하는 과정을 쉽게 조절할 수 있다. 이런 능력 덕분에 향유고래는 최대 2250미터 이상 잠수할 수 있으며, 몸길이가 8미터 이상 나가는 거대한 대왕오징어(Giant squid)를 취식하기 위한 사냥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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