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어린 흰죽지수리를 처음 관찰한 것은 2017년 3월 교동면 난정리 수정산에서였다. 촬영에 성공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더 지난 2020년 12월 무학리 선월산에서였다.
맹금류는 다른 새들보다 관찰과 촬영이 힘든 편이다. 어른이 된 새는 살아온 경험이 있기에 어린 새보다 접근이 몹시 어렵다. 맹금류를 오랜 기간 지켜본 결과, 예민함과 경계심의 정도는 흰죽지수리, 항라머리독수리, 초원수리, 검독수리, 참수리, 흰꼬리수리 순으로 강했다.
8년째 ‘새들의 땅’ 찾은 흰죽지수리
이 흰죽지수리를 관찰하기 위해 교동도를 구석구석 헤맸다. 자유자재로 행동하는 예측 불허한 동선 덕분에 기다림이 일상이었고, 만나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예기치 않은 방해 요인으로 한 해를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추위와의 싸움도 만만치 않았다. 흰죽지수리를 만난 날은 발걸음이 가벼웠고, 만나지 못한 날은 몸이 몹시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흰죽지수리를 만난 지 어느덧 8년 차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매해 성장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이 수리의 생활 습성을 알아가는 과정은 새를 관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탐조의 진정한 즐거움은 이러한 배려와 기다림이다. 평균 수명이 40살에 달하는 맹금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새를 한 수 아래로 보고 쫓고 쫓기는 경쟁 상대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수평적 관계로 여기는 것이 기본적인 소통 방법이다.



강화군 북서부의 교동도는 새들에게 최적의 환경이다. 동쪽으로는 강화도가 있고, 남쪽으로는 석모도가 있다. 북쪽으로 불과 2~3㎞ 바다 너머에는 황해도 연백군이 있다. 섬 북부에서 바로 황해도 땅이 보이는 것이다. 지대가 높은 곳에서는 예성강 하구가,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까지 보인다.
해발 260m 화개산이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그 외 봉황산(75m)·밤머리산(89m)·고양이산(35m)·선월산(73)·수정산(75m) 등은 모두 100m 이하의 낮은 구릉이다. 교동면 전체 면적이 47.14㎢(약 1426만 평)인데 그 중 대부분이 논이나 밭, 숲과 들이다.

이렇게 평화로운 곳을 월동하는 새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해마다 10월과 11월이면 수만 마리의 쇠기러기가 월동을 위해 교동도를 찾는다. 흰죽지수리도 사냥감인 쇠기러기를 찾아 교동평야에 자리한다.
고독하지만 당당한 사냥꾼
올해는 매서운 강추위에 기러기들이 더욱 남쪽에서 월동해 교동평야 개체 수가 크게 줄었다. 마을 주변 농경지에서만 쇠기러기가 보인다. 쇠기러기가 인가 쪽으로 몰리는 건 생존전략이다. 차량과 사람이 자주 오고 가기 때문에 경계심이 강한 대형 맹금류는 접근을 꺼린다. 작은 새들이 소형 맹금류를 피해 인가 근처에 몰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맹금류들도 사냥감이 줄어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사냥감을 따라 다른 장소로 이동하자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냥 전략을 다시 세우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강한 맹금류라도 낯선 환경에서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른다. 맹금류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최적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이유다.


새들이 앉고, 날고, 사냥하는 곳은 우연이 아니다. 흰죽지수리도 선호하는 사냥터, 사냥감의 동정을 살피는 전망대, 잠자리를 각각 지정해뒀다. 전망대는 산꼭대기와 평야의 전봇대 두 곳을 오가며 생활한다. 전부 계획된 동선대로 생활한다. 이 흰죽지수리 또한 주변 환경을 치밀하게 파악하여 이동한다. 교동 평야를 한눈에 꿰고 있으니 교동도의 최강자임이 틀림없다.



흰죽지수리는 다른 맹금류 무리를 상대하며 용맹하게 성장했다. 이 수리는 어린 시절부터 사체(먹이)가 있는 이곳 저곳을 찾아가 기웃거리며 독수리, 흰꼬리수리와 치열한 먹이 경쟁을 벌이며 악착같이 생존 법칙을 익혔다. 생존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배우며 점차 성장한 흰죽지수리는 어릴 때와는 이동 동선도 달라지고 행동도 대범하게 변했다.

지난 2020년 흰죽지수리는 교동면 무학리 선월산에서 양갑리에 있는 야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독수리와 흰꼬리수리 무리가 늘어나자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흰죽지수리는 단독생활을 즐기고 간섭을 싫어한다. 새로운 야산은 교동평야를 사방으로 다 볼 수 있는 자리다.

흰죽지수리는 고독을 즐기를 사냥꾼이다. 10여 마리가 넘는 흰꼬리수리와 사냥터를 공유하면서도 흰죽지수리는 결코 주눅 들지 않는다. 당당하고 용맹스럽다. 공중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자신만의 기술도 있으며 흰꼬리수리보다 진중한 행동을 보인다.


독수리, 흰꼬리수리와 사냥감을 놓고 경쟁할 때도 함부로 덤벼들지 않고 먼 곳에서 주변 상황을 살피는 신중함을 보인다. 어릴 때와는 사뭇 다르다. 독립성이 강해 홀로 움직이면서도 안전을 도모하고 모든 행동을 섣불리 하지 않는다. 제압할 수 있는 모든 먹이를 사냥하면서도 다양한 유형을 선택을 기회주의적 포식자가 됐다.
넌 누구니…용맹한 사냥꾼 옆 아기 새
흰꼬리수리와는 공중전을 자주 펼치는데 주로 영역경쟁과 자존심 대결이다. 흰죽지수리가 지정석으로 삼은 나무에 흰꼬리수리나 다른 새들이 접근하면 목을 하늘로 치켜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경고성 소리를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낸다. 감히 다른 맹금류는 접근하지 못한다. 흰죽지수리는 늘 제일 높고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흰죽지수리는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흰꼬리수리, 독수리와 대적하고 텃세가 심한 까치, 까마귀에게 시달리며 교동평야를 굳건히 지켜왔다.



올해는 지난 8년간 관찰해 온 이 흰죽지수리 근처에 새로운 어린 흰죽지수리가 한 마리 나타났다. 서로의 관계가 낯설어 보이지 않고 함께 행동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사냥터에도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어린 새끼를 데리고 온 모양이다. 태어난 지 2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 어린 유조다. 흰죽지수리는 5~6살이 되면 번식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년의 관찰 결과, 맹금류는 10살이 넘어야 완벽한 성조의 깃털을 갖게 된다.


이 흰죽지수리는 어린 시절부터 해마다 교동도를 홀로 찾아와 월동하며 수많은 역경을 이겨냈다. 교동도에서 성장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완벽한 성조의 깃털을 갖추고 새끼까지 데리고 왔다. 어엿한 모습으로 교동평야를 지키는 모습이 정말 대견하다.



그러나 어른이 된 흰죽지수리는 경계심도 높아져 사람이 먼 거리에서 바라만 봐도 자리를 피한다. 특히 논바닥에 앉아있을 때는 아예 곁을 주지 않고 미리 피해버린다. 온종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날도 허다하다. 일반적으로 맹금류는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오거나 해 질 무렵이면 사냥을 하지 않는데 요즘은 해 질 무렵 먹거나 사냥하는 모습을 보인다. 애써 사냥한 사냥감을 다른 맹금류에게 뺏길까 봐 나름대로 생존전략을 터득한 것 같다.
선물처럼 다가온 석양에서의 한 컷
지난 3일 해 질 무렵, 흰죽지수리가 전봇대에 앉아 사냥감을 살피는 모습을 발견했다.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흰죽지수리를 석양과 함께 담아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흰죽지수리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흰죽지수리는 저곳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다 사냥을 할 것이다.


경계심이 강한 녀석이 혹여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졸여오는 마음을 달래며 기다렸다. 석양이 전봇대를 향해 내려오고 있다. 두어 시간 남짓 기다리자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온다. 그때 논길을 가로질러 차량이 지나간다. ‘아뿔싸, 틀렸구나.’ 흰죽지수리가 다급히 날아가 버렸다. 촬영을 포기해야 하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런데 날아가던 흰죽지수리가 별안간 뒤돌아서 전봇대에 앉는다. 8년간의 우정에 대한 선물인 걸까. 덕분에 석양을 배경으로 한 흰죽지수리의 늠름한 한순간을 담아낼 수 있었다.

■ 윤순영의 탐조 사전 : 흰죽지수리는?
흰죽지수리는 유럽 남부, 러시아 남부, 시베리아 중앙부, 몽골, 인도 북서부 등에서 번식하며, 파키스탄 동부에서 네팔 남부를 거쳐 방글라데시, 인도 남부까지 인도 아대륙 전반에서 겨울을 난다.
국내에서는 넓은 농경지, 하구, 습지에서 볼 수 있는 겨울철새 또는 나그네새인데 매우 드물게 관찰된다. 지금까지 한강하구, 파주 대성동, 철원, 만경강, 낙동강 등지에서 10월 초순부터 3월 중순까지 머무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컷 몸길이는 평균 78㎝, 암컷은 83㎝이며 날개 길이는 190~211㎝다. 몸집은 암컷이 더 큰 편이다.
몸 전체는 흑갈색이고 머리와 목덜미는 밝은 갈색에 금빛을 띤다. 양쪽 어깻죽지에 흰색이 명확해 흰꼬리수리와 쉽게 구분된다. 길고 두꺼운 목, 큰 머리와 긴 사각 형태의 꼬리, 다소 긴 깃털이 다리와 발목을 감싸고 있으며 강한 발을 가지고 있다.
2일 이상 간격으로 2~3개의 알을 낳는다. 포란(부화를 위해 알을 따뜻하게 품는 것) 기간은 43일이며 부화한 지 60일 이후에 첫 번째 비행을 시도한다.
중소형 조류와 토끼, 들쥐, 땅다람쥐, 햄스터 등을 사냥한다. 흰죽지수리가 잡는 대부분의 살아있는 먹이는 무게가 2㎏ 미만이다. 1994년부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멸종위기 적색목록에 올라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단독] “난 중환자” 석방된 전광훈, 윤석열 구치소 접견 확인](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501/53_17776343892541_2717776343738621.webp)











![[사설] ‘윤석열 내란’ 참회 없는 정진석, 국힘은 ‘공천 배제’ 결단해야](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57/154/imgdb/child/2026/0501/53_17776260887741_20260501501452.webp)



















![<font color="#FF4000">[단독]</font> ‘해상병원 사망사고’, 법원이 ‘과실’ 인정했는데…경찰 불송치](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502/53_17776765510962_20260501501662.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