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 속의 요정’ 앙코르공연하는 김성녀
올해 첫 장마비가 내린 지난 21일 오후. 하얀 블라우스에 하얀 두건을 두른 배우 김성녀(56)가 “하하 호호” 웃으며 나타났다. 비가 와서 일부러 챙겨입었다는 흰색 패션과 밝은 웃음에 궂은 날씨가 무색해졌다.
김성녀는 마당놀이로 기억되는 배우다. 동료 배우 윤문식과 짝을 지어 걸쭉한 농담을 거침없이 주고받는…. 극단 미추(대표 손진책)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고, 마당놀이를 시작한 지도 그럭저럭 서른 해가 다 되어간다. 하지만 극단 미추 창단 멤버이자 안주인인 김성녀만의 공연은 한 적이 없었다.
“미추는 워낙 마당놀이 같은 큰 공연으로 일년 내내 돌아가니까 제 공연을 할 시간이 없었어요. (연출가인 남편) 손진책씨도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하구요. 그러던 차에 지난해 송승환씨가 판을 벌여줬어요.”

‘여배우 시리즈’라는 모노드라마 릴레이 기획이었다. <벽 속의 요정>이라는 모노드라마를 40일 동안 공연했는데, 열에 여덟 번은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2005 올해의 예술상을 비롯해, 동아연극상 연기상, 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뽑히는 등 상복도 터졌다. 앵콜 요구가 쇄도해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올리게 됐다.
“난생 처음 해본 모노드라마였는데, 모노드라마의 전형을 구축했다는 과분한 찬사까지 받았아요. 전통 국악부터 록오페라 <에비타>까지, 다양한 무대 경험을 한 게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게다가 잘 노는 방법을 마당 놀이에서 배웠잖아요. 노는 건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벽속의…>는 스페인 내전 당시의 실화를 토대로 일본 작가 후쿠다 요시유키가 쓴 희곡을 작가 배삼식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우리 얘기로 바꾼 것이다. 해방 후 좌우익의 이념 대립 속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40년 동안 벽 속에 숨어 살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벽 속의 요정으로 알고 따르는 딸 ‘순덕이’, 그리고 어머니의 얘기다. 그는 이 작품에서 별 다른 소품없이 1인30역을 소화해 낸다. 혼자 울고 웃고, 노래하고 춤춘다. 뮤지컬 모노드라마라는 부제가 붙은 것은 그런 까닭이다.
“2시간10분짜리 공연인데 혼자 사투를 벌이다시피 해요. 옷이 흠뻑 젖어버릴 정도로 힘들죠. 공연이 끝나면 관객도 저도 다 같이 울게 돼요.”
딸 손지원(29)씨는 영국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다. 어머니는 전통 국극 배우였던 박옥진이고, 아버지는 연출가였다. 이제 연출가 사위만 얻으면 삼대가 ‘배우-연출가 부부’가 될 거라며 그는 또 호호 웃었다.
“제가 공연하는 극장 바로 위에서 뮤지컬 <맘마미아>를 하잖아요. 대형 서양 뮤지컬이 쾅쾅거리는데 한국 뮤지컬 갖고 소극장에서 공연한다니, 거대한 강대국에 혼자 맞서 싸우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감동은 <벽속의 요정>이 세배는 더 클 걸요.”
7월6~2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3만원 균일. (02)747-5161.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