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비밀은 안녕한가요?”
40년지기 친구들이 아내와 함께 커플 모임을 하고 있다. 자신들 근황, 지인 뒷담화, 아이 양육문제 등 소소한 일상을 나누다가 누군가의 제안으로 간단한 게임을 시작한다. 각자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놓고 지금부터 음성통화는 물론 문자와 이메일까지 모두 공유하자는 것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통화는 스피커폰으로 하고, 문자와 이메일은 소리내 읽으면 된다. 재미로 시작한 게임은 과연 이들의 일상에 어떤 균열을 만들어낼 것인가?
영화 <완벽한 타인>(31일 개봉)은 현대인의 모든 걸 담고 있는 휴대전화를 매개로 숨겨왔던 각자의 ‘불편한 진실’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 상황을 담았다. 이탈리아 동명 영화(
모두 흔쾌히 동의하고 시작한 게임인 듯 보이지만, 저마다 내면은 복잡하다. 누구는 걱정과 불안에 안절부절 못하고, 누구는 싹트는 의심에 괴롭다. 영화는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 별다른 장치 없이 휴대전화에 의지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벨과 메시지 수신음이 울릴 때마다 한 사람씩 새로운 비밀이 드러나는 식이다. 사소하게는 다른 사람 뒷담화나 배우자에게 숨긴 금전 문제부터 집안을 풍비박산낼 정도의 메가톤급 진실이 차례로 베일을 벗는다. 강도를 더하며 점층적으로 쌓여가는 사건 앞에 벨이 울릴 때마다 ‘다음엔 또 뭘까’를 기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40년을 알고 지내며 형제 같다고 믿었던 친구, 단점은 있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남편(혹은 아내)이라 믿었던 배우자가 알고보면 ‘완벽한 타인’임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 시작과 끝에 배치되는 ‘월식’은 의미심장한 상징물이다.
아쉬운 점은 한국영화의 고질병인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이다. 가부장적 남편 치하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전업주부, 일은 똑부러지지만 자식 문제만큼은 소아병적 모습을 보이는 커리어우먼, 띠동갑 남편과 사는 귀엽고 애교 넘치는 어린 아내 역할이 조금은 식상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