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자기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다면 세상에 못 이룰 게 없을 것만 같다. 해가 바뀔 때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위해 하루에, 일주일에 몇 시간씩을 투자하기로 마음먹지만 시간과의 싸움이란 게 쉽지가 않다. 서약서처럼 계획 실천을 위한 일정표를 짜서 기록으로 남기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이어리’라는 걸 구한다.
‘다이어리’는 바로 시간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해도 다이어리를 쓴다고 시간이 정복될까? 또 작심삼일…. 362일 동안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인 다이어리를 전가의 보도 삼아 시간과 싸우는 이들이 있다. 다이어리를 통해 시간을 정복했다는 성공사례를 거울삼아 다이어리 사용법 강의부터 찾아 나선다. 강의 장소의 명칭부터 독특하다.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이다.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서울 종로구 동숭동 흥사단 건물 4층에는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라는 생소한 이름의 공간이 있다. 한국성과향상센터가 운영하는 같은 이름의 여덟 가게 중의 하나다. ‘대학생 취업특강’, ‘새로운 패러다임의 재정관리’, ‘사명발견’ 등 성공과 관련된 다양한 강의를 여는 곳이다. 사람들이 흔히 다이어리라고 알고 있는 프랭클린 플래너의 판매처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지난 1월25일 저녁 7시 ‘성공하는 사람들의 시간관리 습관’이라는 주제로 플래너 사용법에 관한, 두 시간 짜리 무료 강의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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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부터 대학강사까지=이날 강의실을 찾은 15명의 수강생들은 엄마를 따라 온 초등학생부터 저녁까지 굶고 간신히 시간을 맞춰 온 대학강사까지, 연령대와 직업군도 다양했다. 15명은 우습다고? 일주일에 두번씩 열리는 대학로점 강의에 매번 이 정도 인원이 참가한다. 2001년부터 시작한 플래너 설명회에는 지난 1월까지 약 10만여명이 다녀갔다. 30∼40대 직장인들의 참석이 두드러지지만, 주부·대학생·자영업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수업의 일부였던 조별 공통점 찾기를 통해 플래너 사용법을 배우러 나온 이유들이 드러났다. 1조에서는 ‘성공을 위해 시간관리와 정리정돈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얘기가, 3조에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는 말들이 나왔다. 다른 2개 조도 마찬가지였다. 다이어리를 잘 정리하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를 넘어 인생계획, 시간관리, 성공을 위해 플래너를 쓰려고 하며, 플래너를 잘 쓰기 위해 이 강의를 찾았다는 것이다. 전업주부인 이미영(38·경기도 고양시 일산 마두동)씨는 “개인적인 시간관리는 물론 살림이나 아이들 교육까지 중구난방인 것 같아 플래너를 샀지만, 잘 안 쓰게 되서 강의를 들으러 왔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시간관리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할 것 같아 초등학교 6학년 딸에게도 주니어용 플래너를 사주고 강의에도 데려왔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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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는 삶의 목표를 이뤄주는 도구?=이날 강사로 나선 박성길 대학로점장은 수강생들의 그런 욕구를 읽기라도 한 듯 “플래너 사용 설명회는 개인과 조직의 사명과 비전을 찾아주는 사명 및 비전 특강”이라는 비장한 말로 강의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인천공항을 출발해 드골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의 예를 들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기류에 의해 항로를 벗어났다가 다시 정상 궤도로 들어오는 것을 반복하며 드골공항에 도착한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자동항법장치다. 예기치 않았던 일과 실수, 계획 차질과 작심삼일 등을 반복하면서도 ‘삶의 목적’에 도달하게 만드는 자동항법장치가 플래너이기 때문에 삶의 목적 없는 플래너는 의미가 반감한다.”

그래서 프랭클린 플래너에서는 ‘사명서’(생명을 사용하는 지침서)를 통해 삶의 목적부터 정립하도록 했다. 사명서 작성은 결국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소중한 것을 찾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10년 뒤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같이 지배가치를 묻는 질문에서부터 ‘당신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나?’처럼 역할을 생각하는 질문까지, 질문지들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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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사용법으로 들어가도 월간계획표→주간계획표→오늘의 우선업무 등 큰 것, 중요한 것 순으로 계획을 잡게 돼있다. 이때 주간계획들은 미리 짜여진 월간계획의 내용들을 반영해야 하고, 일일계획 역시 주간계획을 참고해 작성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하루는 일주일의 영향을 받고, 일주일은 한달의 영향을 받는다. 일년은 더 장기적인 목표, 궁극적으로 삶의 목표를 따라 조직되고, 실천된다는 것이다.

쓰면 이루어진다?=플래너를 쓰는 것 자체가 꽤 품 들고 골치 아픈 ‘일’인데, 가욋일까지 해가며 플래너를 사용하면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해 한국리더십센터 쪽에서 답으로 내놓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미국 블라토닉 연구소의 연구결과다. 이 연구소는 지난 1972년 예일대학 경영학석사과정 졸업생 200명을 대상으로 목표관리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이 가운데 84%의 학생은 목표가 아예 없었고, 13%의 경우 목표는 있으나 기록하지 않았고, 오직 3%의 학생만이 자신의 목표를 글로 써서 관리하고 있었다. 20년이 지난 1992년 다시 그들의 자산을 조사했을 때 13%의 자산이 84%의 2배나 됐고, 3%의 자산은 13%의 10배에 달했다고 한다. 한국 사례도 제시한다. 경기도 용인 문정중학교 2학년8반 학생들은 지난 2005년 4월부터 10월까지 단체로 플래너를 썼다. 플래너 사용 6개월 만에 반 평균이 20점 올랐다고 한다. 쓴다는 것은 자기 설득과정이며, 쓰는 행위 자체가 머리를 자극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플래너 판매자나 사용자들이 “쓰면 이루어진다”고 믿는 근거다.

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제공 한국리더십센터


작심삼일 합시다…삼일마다제4세대 다이어리 ‘플래너’ 활용법

사람들이 통칭해서 ‘다이어리’라고 부르는 시간관리 도구도 알고 보면 진화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 종류에서부터 사용법 강의, 사용자 모임, 참고서적, 포기하지 않고 다이어리를 쓰는 법까지, 다양한 다이어리 정보를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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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의 진화, 지금은 제4세대 플래너

한국성과향상센터의 <수첩이 인생을 바꾼다>에서는 종이에 그때그때 일정을 적는 ‘수첩’을 제1세대 도구로 표현하고 있다. ‘다이어리’는 달력이나 스케줄표에 하루의 예정사항과 일주일, 한달 단위의 계획을 미리 기록하고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시간을 관리하는 제2세대 도구부터다. 제3세대는 여기에 ‘목표설정과 우선순위를 부여한다’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된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급하고 바쁜 일을 위주로 정해진 목표와 이에 따라 결정된 우선순위 실행항목들은 효율만큼의 보람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런 고민을 통해 다시 한번 진화한, 현재까지 가장 진화한 제4세대 도구가 ‘플래너’다. 플래너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에 기초해 자신의 행동을 관리하기 위한 도구다. 행동관리를 통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다. 제4세대 도구는 여러가지 질문지들을 통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데 역점을 둔다. 목표와 우선업무, 업무, 매일의 행동은 모두 가장 소중한 것과 한 방향으로 정렬시킨다. 또 가족·직원 등 개인에게 부여된 여러 역할간의 균형을 잡고, 우선업무에서 배제될 수 있는 인간관계까지 유지할 수 있는 틀로 구성돼 있다.

플래너의 종류

48개국 28개 언어로 2400만명이 사용하고 있는 ‘프랭클린 플래너’는 국내에서도 가장 널리 쓰이는 플래너다. 국내 사용 인구도 30만명으로 추산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으로도 유명한 스티븐 코비 등 프랭클린 코비사의 컨설턴트들이 제작하고 보급하며, 국내에서는 한국리더십센터가 보급한다. 국내에서는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전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또다른 플래너로는 ‘마이타임 석세스 플래너’가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엘엠아이㈜의 워크숍 수강생들에게만 지급된다.

최근에는 디지털 플래너들도 유용한 시간관리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아웃룩’은 전자우편·일정·작업·메모·연락처를 포함해 다양한 정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리더십센터 산하 웹플랜에서 보급하고 있는 ‘플랜 플러스’ 소프트웨어도 프랭클린 플래너를 아웃룩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작심삼일 다이어리, 작심평생 플래너로

실패한 사람들에게 작심삼일은 ‘아무리 계획해도 사흘을 못간다’지만,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한번 마음 먹으면 사흘은 간다’는 뜻이다. 백기락 크레벤자기계발센터 대표는 “꾸준히 쓰기의 시작은 ‘실패하더라도 작심하고 쓰기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한국리더십센터는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플래너 쓰는 7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일단, 새해에만 플래너를 시작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새 분기나 새 달이 시작되는 시기에 맞춰 플래너를 시작한다. 한 가지 플래너를 정해 모든 메모를 그곳에만 적고, 이 플래너를 항상 휴대한다. 또 사명과 비전, 장기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여기에 맞춰 꿈의 목록을 작성한 뒤 매일 15분씩 하루를 계획하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래도 안 되면? 시간관리나 플래닝법에 관한 책을 읽거나 관련 세미나 등을 통해 전문가들의 노하우를 배운다.

사용자 모임, 사용법 강의와 서적

플래너 사용법이나 강의일정 등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한국리더십센터(eklc.co.kr)와 웹플랜(plandays.com), 한국엘엠아이㈜(lmikorea.com), 마이타임플랜(mytyme.co.kr) 등 플래너 보급사의 인터넷 사이트다. 더 구체적인 사용 정보는 플래너 사용자들의 커뮤니티를 통해 찾을 수 있다. ‘프랭클린플래너유저들의모임’(cafe.daum.net/fpuser), ‘성공을 도와주는 클럽’(franklin-planner.cyworld.com/), ‘프랭클린플래너사용자포럼’(www.fpug.org/) 등이 있다. 크레벤자기계발센터의 홈페이지(creven.org) 등에서는 다양한 플래너의 표준 사용법도 제공된다.

플래너 사용을 돕는 책들도 많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김영사) <수첩이 인생을 바꾼다>(한국성과향상센터, 김영사) <석세스 플래닝>(백기락, 한스미디어) <성공하는 사람들의 다이어리 활용법>(니시무라 아키라, 황금부엉이) <꿈을 이루어주는 한 권의 수첩>(구마가이 마사토시, 북폴리오) 등 개론서는 물론 <수첩이 인생을 바꾼다-3주 실천 워크북>(한국성과향상센터, 김영사)나 <프랭클린 플래너 잘 쓰는 법>(이명원, 더난출판) 같은 세부 사용법을 설명하는 서적들도 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한국리더십센터 제공

“연-월-주간 목표 세분화 막대그래프 그려 실천 점검”

송영기씨 ‘프래너’ 활용사례

패션·유통 전문기업인 이랜드그룹은 지난 1995년부터 자체 바인더(플래너)를 보급하고 시간관리 교육을 실시하는 등 직원들의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랜드 직원 가운데서도 바인더 활용을 잘 하기로 소문난 인재개발팀 송영한(29) 주임의 2005년 바인더 활용 성공기를 들어봤다.

‘연간, 월/주간, 연락, 인생플랜, 신앙, 지식, 필독서…’ 등 세분화된 텝으로 나뉜 송 주임의 바인더 첫 장을 열자, ‘2005 오브젝티브 액티버티 타임테이블’이라는 영어 제목의 연간 목표가 눈에 들어왔다. 송 주임은 “‘영적, 지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2005년’이라는 연간 목표를 세운 뒤 영적, 지적, 신체적, 사회적, 기타 영역별로 세부목표와 실행·측정지표, 시간계획, 평가 항목을 만들었다”며 “20% 밖에 실행하지 못한 목표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100%에 가깝게 달성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성경을 2독하겠다’는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제자반 진도×2’라는 실행·측정지표를 만들었다. ‘출퇴근, 이동시’라는 시간계획을 세워 성경을 읽었고, 토막 시간을 이용해 성경을 2.5번 읽을 수 있었다. 150% 달성이었다. 또 패션·유통 회사에 다니는 만큼 ‘옷 잘 입기’라는 목표에 맞춰 ‘월급 10% 패션에 투자’라는 실행·측정지표를 만들어 100% 실천하기도 했다. ‘주 4회 6시30분 출근’, ‘퇴근 후 텔레비전 안 보기’처럼 꽤 까다로운 목표도 80% 가량 이뤘다.

송 주임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바인더를 활용했고,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해 추가로 정리하기도 했다”며 “엑셀로 그린 목표 실천 막대그래프를 책상 앞에 붙이는 방식으로 ‘시각화’함으로써 더 분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바인더를 활용하면서부터 먼저 해야 할 일을 먼저하고, 주어진 일들은 물론 목표한 것들도 함께 수행할 수 있었다”며 바인더 사용이 가져다 준 성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디지털 플래너 마련할까…맞춤형 다이어리 만들까

자신 성격에 맞는 것 고르길

플래너 전문가들은 일단 자신에게 맞는 시간관리 도구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고수가 되면 어떤 도구로도 이상적인 목표관리가 가능하지만 초심자의 경우, 성격과 역할에 맞는 플래너를 찾아야 자꾸 쓰게 되고 효율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조융희(62) 아이티플러스 부사장은 ‘최첨단’ 디지털 플래너 사용자다. 지난 5년 동안 종이 프랭클린 플래너를 사용했지만, 한 달 전부터는 디지털 프랭클린 플래너인 플랜 플러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일단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일정관리의 효율성을 체험한 그는 플랜 플러스가 자동으로 싱크되는 피디에이까지 구입해 24시간 들고 다닌다.

조 부사장은 “영업을 주로 하는 업무 특성상 기록하고 수정할 일정들이 많은데, 디지털 플래너는 기록과 수정이 간편하고 깨끗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개인 컴퓨터에 입력한 내용이 피디에이에 자동 연동되는 것이나, 필요한 페이지를 출력해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런가 하면 아예 ‘고전적인’ 핸드 메이드 다이어리 사용자도 있다. 김은영(30) 경부금속 경리부 대리는 지난해 말부터 직접 만든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김 대리는 5천원 상당의 핸드 메이드 노트 재료 세트를 구입한 뒤 동봉된 설명서에 따라 직접 하드보드지를 재단하고 천을 오려 붙여 다이어리를 만들었다. 그가 지난 연말부터 올초까지 만든 다이어리와 노트 수가 벌써 6∼7개에 이른다. 회사와 같은 건물에 있는 핸드 메이드 노트 재료 판매업체인 비본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인터넷 사이트들을 통해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는 “시중에서 구입해 쓰는 다이어리보다 훨씬 더 애착이 가기 때문에 자꾸 들여다 보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더 자주, 더 예쁘게 메모하게 된다”며 “메모 습관을 들이는 데는 핸드 메이드 다이어리가 제격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