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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출판전망대 /

일본에서 작년에 가장 화제를 끈 신서는 재일한국인 2세인 강상중이 쓴 <고민하는 힘>이다. 곧 밀리언셀러에 오를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자아와 돈, 정보와 청춘, 노동과 순애, 죽음과 늙음 등 우리가 늘 가까이하는 평범한 주제를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인용한 뒤 다시 그것을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사상과 비교하며 평이하게 풀어간다.

책을 읽다 보니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활약하던 100년 전은 지금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과학, 합리적 사고, 개인주의 같은 것이 일시에 몰려들면서 ‘근대의 막’이 열리던 그 당시는 넓은 의미에서 세계화가 막 시작될 때였다. 당시 장기 불황과 내란으로 어지러웠던 유럽 여러 나라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 일본도 동아시아를 하나로 묶으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이런 모습은 국경을 넘어 ‘글로벌 머니’가 세계를 종횡무진 ‘배회’하고 있음에도 그 ‘폭주’를 막을 수 없는 지금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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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따르면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버려지는 바람에 우울증에 빠지거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100년 전에 ‘신경쇠약’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음의 병이 사회문제가 되었던 것과 비슷하다. 또 ‘영적’인 것의 유행, ‘세기말적’이라고 표현되는 병적이고 위험한 문화의 확산, 이해할 수 없는 엽기적인 살인사건 등도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나는 <고민하는 힘>을 읽으면서 자기계발서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고 판단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유화, 정보화, 세계화 등이 진전될수록 ‘개인’이 겪는 아픔의 정도는 더욱 가혹해졌다. 개인은 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자기계발서라고 하는 일종의 우울증 치유제를 습관적으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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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개중(개인+대중)은 지지자, 간판, 돈 등을 모으는 ‘저장’(stock)을 포기하고 세상의 ‘순리’(flow)에 순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정보를 분절화해 전문화, 세분화하던 것을 전인격적으로 다시 통합하면서 진정한 자아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 가진 역량을 능력 이상으로 과도하게 띄워주면서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외쳐대던 미국산 자기계발서에 대한 관심은 이제 급속하게 식어가고 있다. 이에 비해 <고민하는 힘>처럼 자아를 타자와의 관계에서 찾고자 하는 책,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공지영), <아름다운 마무리>(법정),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노희경) 같이 작고 사소한 일상에서 지혜를 찾고자 하는 책,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같은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절대고독에 빠져 있는 가족이야기, 사람이 갖춰야 할 원칙이 뭔지를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인물의 삶을 통해 천착한 책 등은 앞으로 더욱 인기를 얻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책들은 인간 본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