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기와 문명
앤드루 스컬 지음, 김미선 옮김/뿌리와이파리·3만8000원
이런 사람들의 상태를 ‘미쳤다’고 할 수 있을까?
“우울증이건 조증이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 대부분이 지각하는 상식적 현실과 우리가 거주하는 정신적 우주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존재에 관해 환각을 느끼거나 주위 사람들이 망상이라 결론짓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 자기 문화의 관습이나 기대와는 철저히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면서 이를 그만두게 하려고 사회가 으레 동원하는 교정 조치에 무관심한 사람들, 치매 환자의 기괴하게 박탈된 정신생활을 보여주는 사람들.”
영국 태생의 미국 사회학자 앤드루 스컬(70)은 <광기와 문명>(Madness in Civilization, 2015)에서 지난 수백년간 이들 중의 핵심이 미친 사람 또는 그 비슷한 말을 들어왔다고 얘기한다. 책은 시대와 문명이 그들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디서 그 원인을 찾아왔으며, 어떻게 다뤄왔는지 40년 동안 추적해온 결과물이다. 부제가 ‘정신이상의 문화사-성경에서 중세, 정신병원에서 현대의학까지’로 돼 있다. 옮긴이에 따르면, 이 책은 지은이가 대학원 시절 미셸 푸코(1926~84)의 <광기의 역사>(1961) 영어 요약본인 <광기와 문명>(Madness and Civilization)을 읽은 것이 그 출발점이다. 그러니까 한글판 책 제목은 바로 푸코의 그 요약본에서 따온 셈이다. 푸코의 책이 중세부터 20세기까지의 광기의 역사를 다룬 데 견줘 스컬의 이 책은 고대 히브리와 그리스·로마부터 21세기인 지금까지를 탐구한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중세 말과 문예부흥기(르네상스) 초에 광인들을 인간 짐짝처럼 배에 태워 사회와 격리시킨 ‘바보(광인)들의 배’ 얘기를 하는데, 스컬은 유럽에서 광기와 이성의 개념이 어떤 식으로 형성됐는지를 추적하면서 사용한 이 ‘바보들의 배’에 대해 푸코와는 생각을 달리한다. 그 개념이 문학적 발명품이었고, 푸코도 그 점을 인정했지만 ‘정숙한 숙녀들의 배’ ‘군주와 귀족들의 배’와 같은 다른 발명품들과는 달리 그는 바보들의 배는 실재했고 당시 유럽 대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고 주장했다. 스컬은 “결단코 그렇지 않았다”며 그게 화가들의 작품에서나 존재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스컬은 중세 말, 르네상스 초까지 광인들 중 증상이 심하거나 의지처가 없는 극소수를 빼고는 집단으로 그들을 수용, 사회와 격리시키진 않았다고 본다. 15세기에 광인 대여섯 명을 수용한 돌하위스가 네덜란드에 세워졌지만, 런던에 대규모 수용시설 베들램이 들어선 것은 17세기 말이었다. 절대군주시대 유럽은 그때부터 감호소들을 짓고 미친 자와 도덕적으로 평판이 나쁜 자들을 집단으로 감금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능하고 가난하며 생산적 노동을 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국제교역이 늘고 도시들이 팽창하던 그 시절에 그들은 생산적 노동자로 재교육받아야 할 쓸모없는 잉여였던 셈이다. 프랑스혁명 당시 살페트리에르 병원 정신병동 수용인원은 1만명이 넘었으나 실성한 정신이상자는 그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단다. 산업혁명기 시장지향 사회 등장과 함께 광인(바보)들은 사회적으로도, 그들 각자의 가족들로부터도 가산 탕진과 위험을 부르는 재앙적 요소로 치부되고 그들을 수용해 관리하는 것을 돈벌이로 삼는 전문직종도 등장한다. 감호소들은 점차 대형화했다. 그 무렵 광기의 병인을 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찾으려는 노력이 경주됐다.

이 병인과 관련해 책 첫머리의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을 비롯해 이슬람까지 포함한 종교 세계의 광인들은 신의 뜻이나 귀신, 악귀의 소행 탓으로 봤다. 고대 그리스·로마는 신체 이상에서 오는 자연발생설을 병인으로 취했다. 중세는 기독교·이슬람 세계의 연장선상에서 광기를 신, 귀신, 사탄 탓으로, 17세기 이후 다시 신체와 생물학적 원인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광기를 뇌의 증상인 동시에 의미와 상징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거쳐 지금은 생물학적 환원주의와 사회·문화적 요인 사이 어딘가에 광기의 뿌리들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제약산업이 번창하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생물학적 환원주의가 현실에선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컴퓨터·자기공명장치로 뇌의 특정 부위와 사고의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밝혀내고 있는 지금까지도 광기의 정확한 병인학적 뿌리도 쓸모있는 처방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단다.

20세기 중반까지 팽창일로였던 정신병원 인구가 1950년대 중반부터 내림세로 돌아서는데, 그것은 현대적 약물치료가 주요 정신질환 치료에 도입되면서 효과를 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소라진 등 진정제들은 정신병 환자들 관리에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약물치료 혁명이 탈정신병원의 핵심 이유는 아니었다. 제약산업에 엄청난 부를 안겨주면서 확장을 거듭한 약물치료가 일정 역할을 한 건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사회정책의 변화였다. 미국의 경우 정신질환자 수용·치료시설들은 개별 주정부 소관이었는데, 1960년 ‘위대한 사회’ 건설을 내건 린든 존슨 대통령이 공적부조사업을 확대하고 노인 의료와 저소득층 의료 보장제도 등을 도입하면서 정신병원 수용 환자들에게도 일정한 수입이 보장됐다. 연방 보조금으로 충당하는 이런 류의 자금 투입은 환자들 퇴원을 촉발했고 절대다수가 노인환자였던 그들 중 다수는 주립병원이 아니라 연방 지원 사설 양로원 등으로 옮겨갔다. 1970년대 중반에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정신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들에게도 그 혜택을 확대하면서 감호소나 정신병동 인구들이 대거 지역사회로 이동했다. 다하우나 부헨발트 같은 나치의 절멸수용소와 다름없는 환경으로 오히려 정신병·광인을 양산하고 있다는 사회과학자·정신과의사들의 수용시설 비판도 한몫했다.

스컬은 업계의 사활이 걸린 정신병 진단의 표준화를 위해 1980년에 도입된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례편람’(DSM·이하 편람)이 판을 거듭해 발행되고 있으나 향정신성의약품의 부작용은 제거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편람이 판을 거듭할 때마다 질환의 종류가 급증하고 진단 기준이 느슨해지면서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신경과학이 임상적으로 쓸모있는 정신질환 치료제를 내놓은 것은 “지금까지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예컨대 1994~2004년 사이 10년간 ‘소아청소년양극성장애’는 40배가 늘었고, 500명당 한명꼴도 안 됐던 자폐증은 90명당 한명으로 늘었으며, 드물었던 과잉행동장애(ADHD)는 미국 남자아이 10%가 그 ‘병’ 때문에 매일 알약을 먹는다.
스컬은 정신질환의 신경병리학적 원인에 집착하는 것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본다. “왜냐? 뇌를 비사회적 또는 전(前)사회적 신체기관으로 여기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뇌의 구조와 기능 자체가 사회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생물학 자체가 너무나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사회적”이며, 성인 단계서도 계속 발달하는 인간 뇌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사회·문화적 환경요소 자체가 인간의 창조물인 이상 광기의 뿌리는 생물학과 사회적인 것 사이 그 어디에 있을 것이란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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