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10월 브뤼셀에서 열린 ‘전자와 광자에 관한 제5차 솔베이 회의’ 참가자들. 이 중 17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맨 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아인슈타인
1927년 10월 브뤼셀에서 열린 ‘전자와 광자에 관한 제5차 솔베이 회의’ 참가자들. 이 중 17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맨 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아인슈타인

 맨 뒷줄 왼쪽에서 여섯번째가 슈뢰딩거. 맨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는 막스 플랑크
맨 뒷줄 왼쪽에서 여섯번째가 슈뢰딩거. 맨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는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상대성이론과 파동방정식 그 후, 통일이론을 위한 두 거장의 평생에 걸친 지적 투쟁
폴 핼펀 지음, 김성훈 옮김, 이강영 감수/플루토·2만2000원

미국 필라델피아 과학대학의 물리학 교수 폴 핼펀의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20세기 과학의 흐름, 나아가 인류의 세계관을 바꾼 걸출한 두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과 에르빈 슈뢰딩거(1887~1961)의 우정과 협력, 연합(동맹)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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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협력과 연합인가? 두 거장은 양자역학의 무작위성과 모호성에 맞서 세계의 명료한 인과성과 결정론적·연속적 실재성을 옹호했다. 만물을 단 하나의 이론으로 한꺼번에 설명해주는 ‘통일이론’을 수립하려는 것이 그들 작업의 핵심 주제였다.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브라운운동·상대성이론과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슈뢰딩거 방정식) 등은 양자역학 확립에 중대한 역할을 했지만, 두 사람은 양자역학의 무작위성과 모호성에 거부감을 느꼈고, 닐스 보어·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 주류 양자물리학계의 ‘코펜하겐 해석’과 불화하며 거기에 맞섰다.

책은 이것을 기본 줄기 삼아 두 주인공의 탄생과 성공, 정체, 좌절, 재기 등 흥미로운 전기적 요소들을 풍부하게 짜넣어 그들이 최전선에 서있던 20세기 물리학 연구의 맥락과 시대 배경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다. 두 사람, 특히 슈뢰딩거의 탈근대적(?)인 화려한 여성편력까지 피해가지 않는다. 전문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물론 쉽지만은 않으나, 흥미로운 사례들을 적극 활용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부정확하거나 잘못 유포된 관련 지식과 사건들에 관한 인식을 교정할 기회도 조우하게 된다. 예컨대 광전효과나 빛이 관찰자의 움직임과 무관하게 언제나 일정한 절대속도를 유지하고 또 빛보다 빠른 것이 있을 수 없는 이유 등. 질량을 가진 물체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질량이 무한대로 늘고 진행 방향으로 수축이 일어나기 때문에 빛보다 빠른 미립자가 검출됐다는 소동(2011년)은 그래서 오보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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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플루토 제공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플루토 제공

‘아인슈타인의 주사위’ 얘기는 1926년 가까운 친구였으나 철학은 사뭇 달랐던 양자론자 막스 보른에게 아인슈타인이 보낸 편지에 이렇게 나와 있다. “양자역학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 결과를 여럿 내놓고 있어. 하지만 내면의 목소리가 내게 말한다네. 양자역학이 아직 올바른 궤도를 타고 있지 못하다고 말이지. 이 이론은 우리가 악마의 비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지 않아. 나는 신이 어떠한 경우에도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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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평생 자주 들먹였던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인과법칙이 아니라 확률로 얘기하는 양자론의 불확정성·무작위성에 대한 거부였다. 관찰자의 관찰행위에 따라 대상의 실재 상태가 바뀐다는 양자론 세계의 모호성을 두고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아무도 보지 않으면 달이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라는 반박도 같은 맥락. 그가 말한 신은 기독교적 신이나 의인화된 전능의 신 개념이 아니다. 무신론자였고 사회주의자였던 아인슈타인이 얘기하는 신은 그가 공감했던 스피노자의 신, 즉 우주를 채우고 있는 실체, 자연의 법칙에 가깝다.

슈뢰딩거는 몰라도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듣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은 그가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1934년 8월19일 편지에 이렇게 묘사돼 있다.

“강철 상자 안에 가이거 계수기, 그 계수기를 작동시킬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양의 우라늄을 집어넣습니다. (…) 아주 잔인한 방법이기는 합니다만 이 강철 상자 안에는 고양이도 한 마리 집어넣습니다. 한 시간 뒤면 이 계의 결합된 파동방정식 안에는 살아 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똑같은 양으로 뒤섞여 있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가 상자를 열어봐야 비로소 결합된 파동함수의 두 가능성 중 어느 한쪽으로 붕괴한 것, 즉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있을 뿐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고양이는 절반은 죽어 있고 절반은 살아 있는, 살아 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한 이상한 상태에 놓인다. 이 괴상한 자기모순적 진술, 양자 역설은 흔히 양자물리학을 상징하는 얘기로 회자되지만, 실은 양자물리학 개념이 터무니없음을 조롱하려 지어낸 얘기라는 것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는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이는 슈뢰딩거의 독창적 창안이라기보다는 아인슈타인이 한 ‘반은 폭발한 상태이면서 동시에 폭발하지 않은 상태’의 화약 얘기 등을 더 다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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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슈뢰딩거. 플루토 제공
에르빈 슈뢰딩거. 플루토 제공

슈뢰딩거는 아인슈타인의 1913년 강연을 듣고 물리학의 근본적 질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25년 아인슈타인이 언급한 물질파 개념에서 영감을 얻어 ‘슈뢰딩거 방정식’을 창안했고 그것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 노벨상을 추천한 사람도, 그를 베를린대학 교수와 프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천거한 사람도 아인슈타인이었다. 책은 이처럼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알아도 정작 슈뢰딩거에 대해, 그리고 그와 아인슈타인의 남다른 관계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전기와 자기를 통일한 전자기장 이론을 만들고 전자기장이 곧 빛의 파동임을 밝혀낸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연구결과를 일반상대성이론의 확장된 형태로 통합해 원자핵 내부의 힘과 전자기력·중력을 하나의 기본법칙으로 설명하는 통일장이론을 완성하기 위해 생애 마지막까지 애를 썼으나 1930년대 이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슈뢰딩거도 비슷한 길을 추구하면서 최신 양자론적 발견들까지 포괄하며 아인슈타인과 때로 경쟁하기도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유전자(DNA) 이중나선 모형 개발에 영감을 주었다. 아인슈타인은 언론과 대중들로부터는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렸으나 물리학계 신진세대들에겐 점차 외면당하면서 ‘퇴물’이 되고 기념비적 존재로 박제화돼 갔다. 현실은 양자역학 쪽 손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전자기력·강력·약력을 아우르는 표준모형, 거기에 중력까지 더한 자연의 네 가지 힘을 아우르는 통일이론은 최근의 힉스 보손, 중력파 존재 입증, 얽힘·끈이론 등으로 새로운 국면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이론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우주 물질의 5%에 불과하며, 나머지 95%를 차지하는 암흑에너지·암흑물질은 아직도 미지의 상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