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아노
앨런 러스브리저 지음, 이석호 옮김/포노·1만8000원

<가디언> 편집국장 앨런 러스브리저는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매일 반복되는 편집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창조적 자기표현, 칼 구스타브 융의 표현대로라면 ‘문화’를 위해 내 인생의 작은 부분을 별도로 떼어내 할애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 대학 졸업 뒤로 손을 놓았던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2010년 여름 아마추어들을 위한 마스터클래스에서 한 남자 참가자가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를 “때려눕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해 8월 57살 생일을 석 달 앞두고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가 충고한 “피아노 레퍼토리 가운데 가장 어려운 곡”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피아노>는 영국의 세계적인 진보 일간지 <가디언>에서 20년간 편집국장을 지낸 앨런 러스브리저(63)가 난곡으로 소문난 쇼팽 <발라드 1번 G단조> 완주의 꿈을 이루는 1년 4개월 여정을 꼼꼼하게 일기에 담은 책이다. 그는 지난해 5월 사임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 관련 미군 기밀 등을 드러낸 위키리크스 외교문건 폭로(2010년), 세계적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소유의 <뉴스 오브 더 월드> 폐간을 이끌어낸 도청 스캔들(2011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미국 국가안보국 도감청 폭로(2013년) 등 세계적인 특종 보도를 진두지휘했다. 또한 종이신문 <가디언>을 매월 전 세계 사용자 1억명이 방문하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 미디어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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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가 ‘발라드 프로젝트’ 도전에 나선 2010~11년은 위키리크스와 <뉴스 오브 더 월드> 특종 외에 동일본 대지진, 중동지역 혁명 ‘아랍의 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등 초대형 사건·사고가 이어지던 때였다. 그는 하루 12~14시간씩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출근 전 20분간 피아노 앞에 앉았다. 또 알프레트 브렌델, 이매뉴얼 액스, 머레이 페라이어, 다니엘 바렌보임,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등 세계적인 피아노 거장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조언도 들었다. 그는 “연습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마치 내 뇌가 ‘안정’된 것처럼 느껴졌고, 앞으로 열두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모두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책 말미에는 그가 피아노 거장들의 조언을 듣고 메모해가며 연습한 악보를 실었다.

<다시, 피아노>에는 새로운 미디어 모델을 고민하는 편집국장의 업무, 대특종 보도 과정, <가디언>의 두 차례 조간 편집회의 풍경, 뉴스의 미래를 두고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편집부 어웨이데이 행사 등을 소개해 생생한 뉴스룸을 엿보는 재미까지 담았다. 지은이는 말한다. “시간이 없다고? 너무 늦었다고? 시간은 있다. 아무리 정신없이 바쁜 삶이라 할지라도 시간은 있다.”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