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를 위한 경제학 -낮은 곳으로 향하는 주류 경제학 이야기
김재수 지음/생각의힘·1만5000원

“미국 대학에서 소위 주류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

지은이는 처음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번에도 흔한 자유시장 이야기가 이어지겠군’ 하는데, 책의 내용은 다른 곳을 향하겠다고 한다. 따라서 어느 쪽으로 얼마나 나아갔는지가 이 책의 무게를 결정하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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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를 위한 경제학>에서 지은이는 “보수에게 불온하고 진보에게는 성에 차지 않겠지만, 낮은 곳을 향해 저항하는 주류 경제학 이야기”를 펼쳐낸다. 58편의 짧은 글을 책으로 묶은 것인데, 주류 경제학의 언어로 우리네 삶을 들여다 본 셈이다. 지은이는 미국 인디애나-퍼듀 대학(IUPUI)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대학서 주류 경제학 공부한 지은이 ‘기업하기 좋은’ 대신 ‘기업이 경쟁하는’ 나라 “보수와 진보의 틀에 갇히지 말라” 당부도

지은이는 먼저 1부(‘을을 위한 경제학’)에서 행동경제학의 최근 연구 성과 등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진단한다. 갑을관계, 헬조선, 엔(N)포 세대, 금수저와 흙수저, 노오력, 불평등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풀어본다. 이를테면 금수저 문제와 관련해 여러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금수저들은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모두가 노력한다고 해서 금수저가 될 수 없다는 간단한 통계적 사실도 무시한다”고 했다. ‘노오력’ 문제는 함정게임 이론으로 접근한다. “조금만 참으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노오력, 노오오력, 노오오오력을 펼친다. 이는 승자 독식의 경쟁 구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차이로 승패가 결정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진단이다. 대안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대목이 곳곳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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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잃은 부모들은 지금도 천막을 치고 세월호 인양을 감시한다. 누구는 세월호를 과거의 일이니 ‘매몰비용’으로 처리하자고 하지만
자식 잃은 부모들은 지금도 천막을 치고 세월호 인양을 감시한다. 누구는 세월호를 과거의 일이니 ‘매몰비용’으로 처리하자고 하지만

이어지는 2부와 3부에선 주류경제학의 ‘복원’에 나선다. 대표적인 것이 ‘시장이냐 정부냐’는 논쟁이다. “시장과 정부의 관계를 마치 대결하는 것처럼 보는 것은 시장경제를 가장 왜곡된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라며 시장과 정부는 때로는 대체적이고 때로는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강조한다. “보수와 진보의 틀에 갇히지 않고 언제나 중간 어디에서 ‘최적’의 대안을 찾는 것”이 비용편익분석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이다. 효율성과 인센티브와 관련해, 중요한 개념이지만 이를 숭배해선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경제학의 첫 번째 원칙은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이며, 이는 세상 어디에나 기회비용이 있다는 얘기이다. 이를테면 복지를 줄여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를 늘릴 수 있지만, 이는 반드시 양극화 심화 등의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사물의 양쪽 측면을 봐야 한다는 삶의 지혜는 경제학에도 엄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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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의에 대한 고찰은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사실 기업을 시장경제의 장애라 생각했다. 기업은 어떻게든 경쟁을 회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 지은이는 “원조는 사라지고 시장과 기업을 동의어로 사용하는 짝퉁 시장주의가 판을 친다”고 못박는다. 이런 사람들은 시장주의자가 아니라 실상은 기업주의자로 불러야 한다고도 했다. 같은 주류경제학자인데도, 그래서, 지은이의 주장은 신선하다. “진정한 시장주의는 기업의 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의 힘을 믿는다. 기업이 과도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항상 의심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기업이 경쟁하는 나라를 주장해야 한다.”

무역이 빈곤을 줄일 수 있는지 따지면서 지은이는 이런 말을 하는데, 여운을 남긴다. “언제나 흑이거나 언제나 백인 일들은 세상에 많지 않다. 언제 흑이 되고 언제 백이 되는지 따져야 한다.” 체계적인 저술은 아닐지 몰라도, 경제를 보는 지적 근육을 기를 기회만큼은 충분히 독자에게 제공할 듯하다.

책의 내용과 별도로, 지은이는 시작과 맨끝에서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이웃의 가난과 고통에 직면하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지만 연구실에 앉아 있다”면서 종신교수 심사 통과가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고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생 때는 짜장면 배달을 했단다.

스스로 “저는 ‘지잡대’ 나왔습니다”라고 하면서, 대학교 후배들한테 짤막한 편지도 썼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지만, 지은이의 말이라 더 진하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눈부시게 사랑하십시오. 우리 선배들이 응원합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