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적 인간 - 시계 없는 삶을 위한 인문학
이원 지음/지식의날개·1만3000원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군인들에게 새로운 보급품이 건네졌다. 손목시계라는 물건이다. 당시 일부 남성은 사슬 달린 회중시계를 썼는데, 군인에게는 불편했다. 손목시계도 없지 않았으나 주로 여성의 장신구로 여겨졌다. 결국 손목시계는 전쟁을 통해 대중화됐고, ‘시계의 개인화’가 완성됐다. 군대와 시계? 일사불란한 통제가 필요한 군대에서, 시계는 가장 효율적인 통제 수단인 셈이다.
<시간적 인간>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문제 한 가지, 즉 ‘시간’을 다룬다. 난해한 철학서도 아니고, 시간 관리를 위한 자기계발서는 더더욱 아니다. 왜 우리는 매일 쫓기며 살아야 하는지, 왜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두가 알면서도 지나쳐 버리는 문제에 답변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시간관’과 ‘시간 제도’를 검토한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지은이는, 부르디외 등 주로 프랑스 철학자와 사회학자 등의 이론에 기대면서 논지를 전개한다. 간혹 어려운 대목도 있지만, 시간이란 게 모두가 당면한 문제인 만큼 이해에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다만 필요한 논의임에도, 글의 밀도가 약간 떨어진다거나 글맛의 ‘찰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느낄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책은 ‘제1회 방송대 출판문화원 도서원고 공모’에 당선돼 세상에 나오게 됐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과거-현재-미래라는 인간 고유의 시간의식이 어떻게 생성됐는지를 살핀다. 우리는 혹시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 사이에서 현재라는 고독한 섬에 고립돼 있는 건 아닌지 묻는 것이다.
지은이는 인간을 시간적 관점에서 정의하고자 ‘호모 템포라리스’(homo temporalis, 시간적 인간)라는 표현을 제시한다. 템포라리스는 현대 프랑스어의 ‘시간의’(temporel)의 어원이지만, 본래 ‘유한한’을 뜻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시간 의식’이 있기에, 생각하고 성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시간 의식을 가진 인간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불행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과거에 대한 후회는 과거를 고착화하지만, 반대로 과거에서 교훈을 발견하면 과거의 의미가 변한다. 인간은 타임머신이 없이도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 대목은 시야를 세상 쪽으로 돌린다. ‘사회적 시간’인데, 시간이 사람들의 삶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도구가 돼버렸음을 낱낱이 보여준다. 달력과 시계의 역사가 이를 뒷받침하며, 군인의 손목시계는 이 과정을 상징하는 일화이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후 도시 공장에 시계가 설치되면서 자본주의적 시간 개념이 등장한 것도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지만, ‘시간은 돈’이라는 개념은 산업자본주의 태동기에 생겨난 전례 없던 것이었다. “시간은 돈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여기에 한국적 특수성은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노동시간이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34위를 기록했다. 프랑스가 은행조차 점심시간에 문을 닫는 것에 견주면, 우리는 지나치게 고용주 위주의 시간 시스템 속에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 중심적 시간 시스템에 따라 소비자로서 잠시 불편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소비자가 아닌 직장인으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책의 세 번째 부분은 ‘미래의 불안’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은 어떻게 가능할지 묻고 답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고용의 유연성은 고용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수입의 정체 혹은 감소는 희망을 꺼뜨리고 있다. 양극화 문제는, 시간의 관점에서 모두 ‘미래의 불안’으로 귀착된다. 자살이 단지 개인의 문제(우울증 등)가 아니라고 할 때, OECD 회원국 가운데 독보적 1위에 올라 있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이를 명확하게 증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로또는 유일한 희망일 수 있다. 1000원으로 일주일치 희망을 살 수 있다면 결코 나쁘지 않은 소비인 셈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희망 대신 절망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현재주의’가 그나마 나은 해법일까.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에서 행복을 찾으면 될까. 현재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에 비해 현재가 만족스러운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행복을 누리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다가올 미래다. 소비로 현재의 허기를 채우도록 부추기는 것은 자본주의의 주요한 전략이 되기도 한다. “극단적 현재주의는 과거와 미래로부터 도피를 조장한다.”
이에 지은이는 미래로 눈을 돌려, 우리의 실천 방식을 살핀다. 우리는 몸속에 체화된 사회적 규칙이나 질서인 ‘아비투스’(지은이는 이를 ‘사회적 습관’이라 번역했다)에 따라 미래에 대처한다. 요컨대 미래에 대한 꿈조차 사회적 습관으로 길들여진 것이다. 그래서 “개천에서는 용이 되는 것을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
지은이는 에필로그에서 ‘시계 없는 삶’을 제시한다. 이는 “과거의 족쇄를 풀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삶”이다. 그리고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질적 차이와 고유함을 발견하는 삶”이다. 지은이는 이를 위해 “자유로운 생각과 의지”을 꿈꾼다. 가야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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