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내게 말한 것들
황선금 지음/실천문학사·1만2000원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노동조합 설립과 그 활동은 헌법 제33조에 명시된 기본권이다. 그러나 현실은 헌법과 다르다. ‘노조파괴’로 악명 높은 유성기업에서는 최근에도 한 노동자가 자살을 선택했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전혀 새롭지 않은, 놀랄 것 없는 이야기다. <공장이 내게 말한 것들>에서 자신의 삶을 고백한 7명이 일했던 원풍모방 노동자들은 독재정권 시절 회사뿐 아니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등 공권력까지 동원된 탄압에 시달렸다. 결국 원풍모방노조는 1982년 559명이 해고되고 8명이 구속된 끝에 와해됐다. 제3자가 보기엔 아름다울 수 없는 ‘실패’의 기록이지만, 정작 이 책에 등장하는 당사자들은 “민주노조의 초대 상집간부였다”(이필남)며 자랑스러워하거나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임충호) , “노조는 나의 대학이었다”(최금숙)며 뜻깊은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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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 장남이 잘돼야 가족이 잘된다는 기대에 등 떠밀린 딸들은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원풍모방에 입사했다. 쉬지 않고 일해 모은 돈을 집에 보내고 나면 생활비조차 빠듯했던 이들에게 노조는 따뜻한 집이었고 세상을 배울 수 있는 학교였다. 임충호씨는 노조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룰 수 없어 좌절했던 나 자신을 위로받을 수 있었”고, 김영희씨는 “용기를 가지라는 지부장의 말에 나를 변화시키고 싶은 열정”을 느꼈다. 때문에 해고되고, 수배되고, 가족에게 손가락질받는 고통 속에서도 원풍모방에서의 하루하루를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의 구술을 엮은, 그 자신도 원풍모방 노동자였던 황선금씨는 이렇게 말한다. “원풍노조는 그 전투적 면모만으로 민주노조의 전설이라는 갓머리를 쓰게 된 것이 아니다. 교육 프로그램 등 많은 일상이 오히려 노조가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편에 설 때 무슨 일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