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절망에 익숙해져버린다는 것은 절망 그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단언했다. 내가 후쿠시마를 오가며 간절히 바라는 것 또한 나와 우리가 이 절망스런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후쿠시마를 오가기 시작한 지 5년이 넘었다는 사진작가 정주하 백제예술대 교수는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에서, ‘후쿠시마’라는 단어가 일본의 지명이 아니라 “인류에게 닥친 재앙을 드러내는 특수명사가 되었다”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인류 대다수는 2011년 3월11일, 바로 5년 전 오늘 일본 도호쿠(동북) 지방을 덮쳐 순식간에 수만명의 사람들을 휩쓸어간 대지진과 쓰나미, 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재앙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듯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부터 그 주변 지역을 여러차례 답사했던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는 그것을 ‘망각’이라고 했고, 이 책에서 다시 “망각이라기보다 부인”이라고 고쳐 말했다. 사고 원전 ‘완전 통제’가 가능하다는 ‘거짓말’을 공공연히 내뱉으면서 원전 재가동을 지시한 아베 정권의 행보에서 그 이유의 일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종교학과 역사학 연구자인 이소마에 준이치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의 책 <죽은 자들의 웅성임>을 보면, 그런 익숙해짐이나 망각 또는 부정은 일본, 그리고 재난지역 현장에서조차 완연하다. 재난 발생 뒤 4년간 현지를 돌며 사람들을 만난 이소마에 교수는 2014년 여름 그곳에서 “지금은 재난지역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곳 출신자나 피해자 가족이 아닌 이들에게 “대지진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도쿄나 교토의 서점들을 장식했던 ‘동일본대지진 특집’ 코너들도 사라졌고, 한때 들떴던 ‘부흥’ 경기도 지역 거점도시들에 집중됐을 뿐이다. 그나마 센다이 등 중심도시들 환락가를 흥청거리게 했던 거품도 2013년을 정점으로 꺼졌다.
반핵 활동가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의사회’ 공동설립자인 헬렌 캘디콧이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원전 재앙을 비롯한 핵 재난의 의학적·생태학적 측면에 관한 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글을 엮은 <끝이 없는 위기>에 따르면, “역사상 가장 큰 핵 재난”인 후쿠시마 원전 재앙은 그러나 지금도 진행중이다. “앞으로 수천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것”이란다.
이미 일본 국토의 10%를 덮은 방사성 낙진의 독성은 수십만년 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15만명 이상이 살던 곳을 떠나 대피 중이며, “채소, 생선, 심지어 마시는 물도 심각하게 오염”됐다. 후쿠시마 원자로의 손상된 용기들은 방사성 물질을 계속 배출하고 있다. 수소폭발을 일으킨 3기의 원자로 해체나 봉쇄에는 적어도 30~40년의 세월이 더 걸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방사선량 방출은 향후 40년 이상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체르노빌 원전 재앙 뒤 이미 100만명 이상이 그 직접적인 영향으로 사망했고 앞으로도 수백년 동안 위험수위의 방사능에 계속 노출될 것이라는 유럽. “일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대기와 바다의 방사능 오염 때문에 미국 캘리포니아산 다시마의 방사성요오드 농도가 훨씬 짙게 검출됐다. 일본 인접국들은 괜찮을까?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도 동참한 책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은 2011년 11월부터 이들과 함께 후쿠시마 피해지역을 돌며 사진을 찍은 정 교수의 작품전시회가 계기가 됐다. 전시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서울 평화박물관을 거쳐 일본 6개 지역 순회전시로 발전했고, 그때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식민주의와 연대, 예술, 희망 등을 주제로 현지 관람자들과 ‘갤러리 좌담’회를 열었다. 그 좌담과 전시회 사진들을 묶어 지난해에 낸 일본어판을 이번에 번역 출간했다.
서 교수는 이들 사진전과 좌담회를 “발터 베냐민이 말한 ‘유리병 편지’”에 비유했다. 외딴섬에 표착한 표류자가 언제 누구에게 도달하리란 기약도 없이 유리병에 넣어 바다로 떠나보내는 편지. “그것이 몇 년 후일지, 아니면 핵폐기물의 해가 없어진다는 10만년 후일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누가 주워 읽게 되리라는 ‘허무한’ 희망은 이뤄질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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