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
가토 나오키 지음, 서울리다리티 옮김
갈무리·1만9000원
2013년 어느 날 도쿄 신오쿠보의 거리에서 벌어진 혐한 시위에는 여느 때처럼 “쳐죽여라”, “내쫓아라”라는 구호가 난무했다. 이날 시위대 현수막에는 ‘불령선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는 “죽여라”라는 현장의 함성과 어우러져, 오래전의 일을 떠올리게 했다.
그 90년 전인 1923년 관동(간토)대지진 때 ‘불령선인’(불온한 조선인)이라는 말 아래 조선인 수천명이 학살당했다. 증오언설(hate speech)은 증오범죄(인종학살 등)로 이어질 텐데, 정녕 되풀이하고 싶다는 말인가. 이건 민족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그러나 일본에는 다른 모습도 있다. 프리랜서 작가인 이 책의 지은이는 2013년 3월부터 당시 혐한 시위에 대한 항의 행동에 매번 참여했고, 불령선인 현수막을 보고는 오싹했다고 한다. 이에 관동대학살이 벌어진 도쿄 각지의 현장을 찾아 사진을 찍고 당시의 증언과 기록을 정리해 블로그로 알리기 시작했으며, 이를 다듬어 책으로 묶어냈다.
지은이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객지에서 이유 없이 살해된 사람들의 면면을 그들의 조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이로써 이 책의 임무는 일단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1923년 9월1일 토요일 오전 11시58분 땅이 크게 출렁거렸다. 단 몇 분 사이에 10만채 이상의 집이 무너졌다. 불은 더 무서웠다. 다음날 오전까지 화마는 29만채의 집을 파괴했고, 사망자(행방불명자 포함)는 10만5000여명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지진 당일 오후부터 ‘조선인 폭동’이라는 유언비어가 급속히 퍼졌고 테러는 시작됐다. 축 늘어진 몸뚱이를 둘러서서 차고 찔렀다. 주검이 “장작처럼” 쌓였다.
책은 지은이도 서문에서 밝혔듯이 조선인학살 사건의 전체상을 ‘해설’한 것이 아니다. 90년 전 도쿄 거리에서 사람들이 경험했던 일을 독자들이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책의 막바지엔 현재 추도와 혐오가 병존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여준다. 학살 당시 일부 일본인들이 조선인과 연대했다는 점이 다행스럽고, 이 책(2014년 간행)이 일본에서 1만부 이상 팔렸다는 소식도 긍정적이다.
올해 9월1일로 관동대지진 92주년을 맞았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이기에, ‘무슨 사건 몇 주년’이 참 많다. 그래도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가 미래를 구성하는 바탕이 된다는 걸 우리는 안다. 한 걸음 나아가, 우리 속에 증오언설의 독버섯이 자라고 있는 건 아닌지도 경계해야 한다.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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