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 게바라를 존경하는 런던의 서른네 살 젊은이가 총 대신 꽃을 들었다.
“일인 탄소발자국(한 사람이 소비하는 탄소에너지를 땅의 넓이로 환산한 수치)은 2.2헥타르이며 지금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1.8헥타르다. 지구는 경작할 수 없는 땅에 나무를 심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세계 경작지를 66억 인구로 나누면 한 사람당 축구장 넓이의 반인 2000㎡가 돌아간다. 경작하지 않는 땅을 포함하면 2만㎡에 이른다. 하지만 인류의 15%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이 1억4800만㎢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땅에 법과 철망으로 된 울타리를 쳐놓고 있다. 이렇게 ‘모자라는 동시에 방치된’ 땅에 꽃을 심고 나무를 가꾸어야 한다.”
<게릴라 가드닝>의 지은이 리처드 레이놀즈는 그렇게 버려진 땅에 씨앗을 뿌리는 행위를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온실가스로 더워지는 지구를 파탄으로부터 지키자는 주장과 함께 “거대한 농장의 담장을 무너뜨리는 것은 트랙터이며 동시에 탱크다”라는 체 게바라의 말을 호기롭게 인용하면서 책의 서두를 연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원예학을 전공한 소시민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버려진 땅에서 지은이가 읽은 것은 이웃을 잃은 도시의 삶이다. “쓰레기가 쌓이고 주정뱅이가 쉬를 하는 땅의 존재는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자긍심과 결속력을 잃어버렸다는 증거다.” 게릴라 가드닝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몸부림이다. 굳이 버려진 땅, 폐허가 된 집터가 아니어도 증거는 곳곳에 있다. 잡초가 우거진 도로변, 민들레꽃이 점령한 중앙분리대나 로터리, 딱딱하게 굳어 물이 스며들지 않는 가로수 둘레, 벌레가 끓는 시멘트 담장이나 울타리 아래…. 그런 곳을 일구다 보면 하나둘 이웃을 얻게 되고, 나아가 뜻하지 않게 지구를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은이의 시작은 소심하다. 2004년 자신이 세든 10층짜리 아파트 단지 앞 버려진 화단이 눈에 밟혔다. 불평을 늘어놓기보다 스스로 총대를 메기로 했다. 새벽 두시에 일어나 쓰레기를 치우고 땅을 파고 빨간색 시클라멘, 라벤더와 캐비지트리 세 그루를 심었다. 남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만일 대놓고 한다면 허락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다. 혼자만의 비밀로 묻어두기에는 꽃밭 가꾸기가 너무 재밌었다. guerillagardening.org라는 도메인으로 블로그를 열고 변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몇 주 뒤 자신의 사이트가 얼마나 검색되었는가를 알아보다가 유사한 사이트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현재 그의 웹페이지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7만이 넘었고, 5년 전부터는 해마다 5월1일이 되면 북반구 전역에서 ‘세계 게릴라 가드닝의 날’을 기념해 동네 곳곳에서 골든 비컨을 심는다고 한다.
지은이는 책에서 뜻을 같이하는 전세계 사람들의 활약상을 소개하고 게릴라 가드닝의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한다.
그는 한밤에 도로 한가운데 나무를 심는다거나, 돈으로 산 주차시간 동안 그 자리에 잔디를 깔아두는 등 시위성 가드닝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가장 해로운 곤충으로 두 발 달린 공무원을 꼽는다. 그러나 일단 그들의 감시를 피해 꽃밭 모양을 갖추고 나면 반응이 달라지더라고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또 선명한 색의 수선화, 칸나, 해바라기, 향기가 진한 라벤더, 샐비어, 저항력이 강한 돌나물, 시클라멘, 금잔화, 라일락, 번식력이 강한 범부채, 코스모스 등을 심으라고 권한다. 감자, 근대, 양파를 심고 공동으로 수확하는 방법도 괜찮다고 한다.
다음은 지은이와의 이메일 일문일답.
-어떻게 게릴라 가드닝을 시작하게 됐나?
“꽃밭 가꾸기를 원래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정원이 없다. 주변 꽃밭은 볼썽사납게 잊혀져 있고 도로변은 흙탕물투성이다. 그곳을 아름답게 바꾸면 나의 정원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당신의 게릴라 가드닝 원칙과 결과를 설명해 달라.
“처음부터 끝까지 내 책임 아래 움직인다. 도움이 필요해도 다른 이한테 함께 가자고 할 뿐 의존하지 않는다. 조직을 꾸리려 하지 말라. 다만 지나가면서 관심있어 하면 자신있게 말하라. 도와줄 것이다. 낯선 이들을 만나는 것은 꽃밭 가꾸기의 보상이다. 나는 이렇게 약혼녀를 만났다. 나의 작업은 교통섬에 라벤더 심기, 중앙분리대에 해바라기 심기, 버려진 꽃밭 가꾸기 등이다.”
-게릴라 가드닝으로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나?
“없다. 체포하겠다고 위협받은 적은 있다.”
-목적이 뭔가?
“사람들로 하여금 식물이 우리의 공동체를 생태적·사회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게 하고, 관습이나 법률을 두려워하지 말고 공공의 영역을 다르게 보고 그 모양을 새롭게 만들어가도록 북돋는 것이다.”
-가드닝 비용은 어떻게 대나?
“라벤더 베개를 판매한다. 웹사이트를 통해 씨앗이나 식물 등 현물이나 돈을 기부받는다.”
-궁극의 꿈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행동하도록 고취하고, 전세계의 나 같은 사람들을 연결해 게릴라 가드닝의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게릴라 가드닝이 심상한 것이 되어 더이상 게릴라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나?
“물론이다. 행동의 직접 결과가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을 바꿈으로써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