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건축사의 절반은 교회건축사다. 그다음으로 공공건축과 주거건축이었는데, 중세와 근대를 지나면서 학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큼 형태와 건축이 다양해졌다. 하지만 상점건축은 17세기까지 단순한 형태였다. 길을 향해 늘 열린 네모꼴의 방이다. 지금도 아무리 명품점이라 해도 쇼윈도를 걷어내면 과일가게와 다를 바 없다. 이렇듯 상점의 형태가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목이 얼마나 좋은가가 중요할 뿐 내부공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7~18세기 들어 상점이 사교공간의 성격을 띠게 되고, 유리창의 발명으로 전면이 밝아지면서 사정이 달라진다. 그동안 상업건축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건축가들이 이곳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벽면의 장식, 가구, 진열방법 등 인테리어에 구현된 자신의 개성을 진열창을 통해 거리로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20세기 초 철과 유리를 소재로 한 아르누보가 그것. 반 데 벨데, 빅토르 오르타 등이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 이후 한스 홀라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 내로라는 건축가들이 고급상점 설계에 뛰어들었다.

건축학자인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제 상업건축만으로 건축사를 엮을 수 있다고 본다. 인류사는 도시화와 등가이며, 도시는 상업건축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길모퉁이 건축>은 양식의 변화, 기술의 발전, 유명 건축가의 계보를 중심으로 서술한 일반적인 건축사 기술방식에서 벗어나 ‘길’이라는 날실과 ‘상업건축’이라는 씨실을 ‘속도’로 엮은 건축인문학 책이다. 눈 깜짝할 새에 공룡처럼 비대해진 상업건축에 대한 경고이자 이를 등한시해온 건축가들에 대한 반성으로 읽힌다. 지은이는 친구들과 뛰놀던 골목길과 첫사랑을 기다리던 길모퉁이 가로등의 기억을 되찾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지은이의 안내를 따라 수레-자동차-승강기-온라인 순으로 탈것을 바꿔 여행을 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길옆의 건축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자동차로 옮겨 타기 전까지의 상업건물은 느릿느릿 움직이는 보행자를 위한 것으로 이슬람의 바자, 또는 그러한 재래시장통에 지붕을 씌운 아케이드나 이를 수직으로 쌓아올린 백화점이 고작이다.
하지만 자동차에 오르면 거리의 쇼윈도는 자동차의 속도에 맞춰 기다란 통창으로 바뀌고 고속도로를 따라 교외도시에 이르면 주차장을 두르고 돌아앉은 쇼핑몰이 등장한다. 도심의 길이 복잡하고 위험해서 교외로 옮겨간 이들을 위한 인조공간은 여가시설과 결합하면서 작은 도시가 되었다. 지은이는 화석연료와 함께 수명이 다할 것으로 예측한다. 맹목적으로 국내 수입된 것이 일산, 분당, 중동, 산본의 대형할인점들. 그것이 도심으로 들어와 세력을 확장한 것이 서울의 가든파이브나 타임스퀘어다.
승강기가 등장하면서 한껏 우아를 떨던 교회, 왕실의 계단이 퇴색하고 높은 것을 경험하고 싶은 부르주아지의 상업공간이 5층의 한계를 넘어 첩첩이 쌓아올려진다. 뉴욕, 시카고, 쿠알라룸푸르, 타이베이, 두바이 등 곳곳에서 높이경쟁이 벌어졌다. 한국에도 잠실 제2롯데타워,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있다. 하지만 이들 고층건물은 주변 상권의 씨를 말린다. 록펠러플라자 같은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문화의 생성지 구실은 하지 못한다.
지은이는 ‘이것은 아니올시다’라고 말한다. 1%를 위한 것으로 도시의 주인인 99% 주민들의 삶과 유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의 66만개 건물 가운데 5층 이하가 95%이며 토지의 1/4이 제2종 일반주거지역이다.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도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길모퉁이 건물인 ‘중간건축’ 개념을 만들어내 그 필요성을 역설한다. 중간건축은 도시의 이면 길모퉁이에 면하면서 승강기 없이도 오르내릴 수 있는 중층밀도 건축의 집합으로, 주거, 상업, 업무 공간이 섞여 있어 살며 일하며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으로 대지 250㎡, 연면적 600㎡, 4층, 건폐율 50%, 용적률 200% 규모의 건축물을 말한다. 지은이는 상업공간과 더불어 중소규모 사무실이 주택가와 상업시설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면서 마을을 이룬 가로수길과 서래마을을 좋은 예로 든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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