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생각한다> 슬픈한국 지음/이비락·1만6800원
6600만원. 잘나가는 대기업 중간 간부의 1년 연봉 정도인 이 액수는? 수도권 102㎡(30평대) 아파트의 진짜 가격이란다.
파격적인 주장을 하고 나선 이는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의 유명 논객인 ‘슬픈한국’. 그의 두 번째 책 <한국을 생각한다>에서 슬픈한국은 6600만원을 초과한 아파트 가격은 죄다 거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5억~6억원대, 서울 강남 102㎡ 아파트는 보통 10억원을 넘는 게 현실이다. 6600만원과 10억원의 간극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은이는 토지 지분 평가액에 철거비용을 제외한 것이 아파트 가격에 수렴한다고 규정한다. 아파트의 경우 토지 지분이 작기 때문에 그 정도 가격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건설사와 은행의 몫이다. 즉 토건마피아와 은행마피아가 작당해서 국민들을 투기로 내몰아 국민의 돈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은이가 말하는 건설사와 은행이 정부와 한통속이 돼 서민들 돈을 빼앗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성장률에 목숨건 역대 정권은 건설 경기를 통해 이 목표를 상당 부분 달성했다. 그 가운데 부실채권 발생 확률이 가장 낮은 아파트를 선호했다. 정부는 경기 상승을 위해 돈을 마구 찍어댔고 인플레이션과 투기가 일어났다. 인플레이션 초기에 투기를 한 사람은 큰돈을 벌고, 하지 못한 사람은 가난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졌다. 수도권 주택의 집값은 30년 전과 대비해 300배가 올랐다. 투기꾼과 일반 서민의 재산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정부는 유리지갑인 월급에는 철저하게 세금을 물리면서 아파트 투기 수익과 주택 보유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 부동산 투기에 앞장서서 큰돈을 번 재벌·사학·종교·언론 같은 기득권 세력은 정부의 보유세 정책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동을 걸었다. 정부는 은행을 통해 건설사를 지원했고, 건설사는 주택담보 전당포인 은행을 믿고 3.3㎡당 150만원이면 짓는 아파트를 2000만원에 팔았다. 그래도 미분양 따위는 없었다.
아파트 불패신화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과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위기를 맞았다. 위기가 닥쳐도 건설사는 정부에 아파트를 사라고 떠넘기는가 하면 은행들은 혈세를 수혈받았다. 정부는 그래도 부동산 경기 진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세금을 써서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주고 20조원이나 들여 4대강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험한 줄타기는 이제 파탄이 임박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미국 금융위기의 본질은 주택 가격의 문제보다 저축과 일자리 창출 실패로 인한 상환 문제였다며 우리나라의 저축률과 개인의 가처분 소득이 심각한 수준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책은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고 말한다. 현 정권의 이런 경제정책 때문에 집권 말기로 갈수록 환란, 부동산 폭락, 물가 폭등 등의 위험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치 선진화로 민주주의와 진보를 이뤄내는 것만이 한국 경제를 살리는 길이란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진보를 담보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몇몇 정치인들을 책 마지막에 꼽은 부분에 대해서는 찬반이 갈릴 것 같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