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주례사>

법륜 지음/휴·1만2000원

결혼도 해보지 않았을 스님이 한 주례사를 누가 들을까, 하겠지만 대단하다. 9월 초에 나온 책이 두 달여 만에 7만부가 나가고 다시 2만부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출판사 쪽은 하루 평균 1200~1500부씩 나가는 지금의 추세로 보건대 올 연말까지는 10만~12만부를 넘기지 않겠느냐며, 스테디셀러가 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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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회라는 불교 수행단체를 이끌고 있는 법륜 스님은 지난해 정해진 주제 없이 현장에서 나온 질문에 바로 대답하는 ‘즉문즉설’(則問則說) 전국 순회강연을 했고, 그때 강연 주제가 사랑과 결혼이었다. <스님의 주례사>는 그 즉문즉설 녹취문 중 일부를 가려 뽑아 간추린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부부 사이에 생긴 갈등 문제예요.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 왜 갈등이 생길까요?” 스님은 그게 다 상대방 덕을 좀 보자는 지극한 이기심에서 비롯됐다고 잘라 말한다. 스님 얘기는 길게 에두르거나 번다한 장식이 없다. 쉽고 명쾌하다. 하지만 그 정도 얘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끌릴까.

그다음 얘기는 “결혼은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고, 같이 살아도 귀찮지 않을 때 해야 합니다”로 이어진다. “내가 온전한 상태에서 상대와 관계를 맺을 때 …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덕을 보려 하지 말고 덕을 베풀라는 것, 그런 걸 깨친 경지가 ‘온전한 상태’인 듯한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 “결혼한 아내와 남편은 자식이 없는 스님들보다 열배, 백배는 더 열심히 수행해야 합니다.” “끝없는 연습” “수도” “마음공부”도 같은 말인데, 먼저 이치와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 중심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교설이 자리잡고 있다. 스님 얘기는 사랑과 결혼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관계, 개인의 절망감, 무지, 행복, 운명 등 닿지 않는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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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는 어쩌면 이런 일상 속의 잡다를 화두로 용맹정진하는 치열한 상구보리·하화중생의 보살행으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르겠다. 불법은 “첫째 자기의 병을 치유하는 것”이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 괴로움 등이 모두 수행으로 치유할 수 있는 병이란다. 둘째는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라는 것. 셋째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생태환경운동과 기아·질병·문맹퇴치운동, 인권·평화·북한돕기·통일운동 등을 앞장서서 실천해온 까닭을 짐작하게 하는 이 부분이 어쩌면 스님 보살행의 진정성과 비범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환경이 나빠지면 우리가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결국 전 인류가 멸망합니다. 남북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수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 고통이 오지 않는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신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바로 수행이다. “삶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수행의 과제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행을 한다고 산속으로 머리 깎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수행의 과제로 보고 해결해 가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늘 점검하면서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야 해요.” 그리하여 도움을 받는 객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주인이 돼라! 사랑과 결혼, 그 복잡미묘한 문제를 푸는 해법도 거기에 있다. 스님의 명쾌하고 재미난 얘기들 속에는 단순한 실용적 교훈담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끌리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