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학생, 교사, 시민이 함께 읽는 프랑스 경제사회 통합 교과서〉
모니크 아벨라르 외 지음·유재명 외 옮김/휴머니스트·6만원
2005년 사회과목 교사인 김원태씨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소집한 일반사회영역 분과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2007년 8차 교육과정 개편을 앞두고, 새로운 교육과정을 어떻게 꾸릴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는 정치·경제·사회·법·문화 등 각 영역의 전문가들 앞에서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바를 말했다.
“지금 교육과정엔 ‘노동’이라는 항목 자체가 없습니다. 이번 개편 때에는 관련 내용이 꼭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수들 사이에선 잠시 침묵이 흘렀고, 정치 전공 교수가 입을 뗐다. “그건 경제 영역인데….” 경제 전공 교수는 “그건 법 영역”이라고 미루고, 법 전공 교수는 “사회 영역이 맞다”고 미뤘다. 결국 ‘폭탄 돌리기’를 하는 통에 김 교사의 문제제기는 흐지부지 사라졌고, 노동 교육은 공백으로 남게 됐다.
이런 현실에 화가 난 김 교사는 자신이 속한 전국사회교사모임의 교사들과 머리를 맞댔고, 논의 끝에 다른 나라의 ‘제대로 된’ 교과서를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우리 교육 현실을 직접 바꾸기 어려우니 국내 교육계에 ‘충격’을 주는 우회적 방법을 택한 것이다. 김 교사는 한국사회경제학회와 출판사를 끌어들였고, 5년 동안의 노력 끝에 <한국의 학생, 교사, 시민이 함께 읽는 프랑스 경제사회 통합 교과서>를 내게 됐다.
지난 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전국사회교사모임 소속 교사 네 명은 “프랑스의 경제사회 통합 교과서를 통해 우리 교육 현실에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번역 출간을 기획한 교과서는 프랑스에서 보급률 2위로 알려진 나탕 출판사의 교과서다. 일반계열 고등학교에서 2학년 경제사회 전공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이며, 원제를 그대로 풀이하면 ‘경제사회학’이다.

교과서 자체만 서로 견줘보자면, 우리 교과서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프랑스 경제사회 교과서를 보면, 국내에서 벌어진 쇠고기 판매업자들의 짬짜미(담합)에서부터 파업·노사갈등과 같은 경제주체들끼리의 갈등, 사회 불평등 등 온갖 현실의 문제가 그대로 제시된다. 그렇지만 다양한 관점의 책과 신문기사 따위를 근거 자료로 삼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편향된 관점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토론을 통해 생각을 발전시키도록 하고 있다.
우리 교과서는 어떤가? 김원태씨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아 갈수록 교과서가 추상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교과서에서 ‘정당활동’을 설명하는 단원에 생뚱맞게 미국의 전당대회 사진이 실려 있는 것이 그 사례다. 야당의 전당대회를 실어도, 여당의 전당대회를 실어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냥 외국의 사진을 쓴다는 것이다. 천희완씨는 “학문 분과에 맞춰 경제·사회·정치·법 등을 따로따로 가르치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경제·사회 영역을 통합해 가르치는 프랑스 교과서에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교과서는 그러면서도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남몰래 감추고 있어서 더 큰 문제라고 한다. 정년퇴임 뒤 프랑스의 교육체제에 대한 연구로 일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송용구씨는 “객관적 자료를 통해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프랑스 교과서와 달리, 우리 교과서에서는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의 견해가 마치 객관적인 사실처럼 제시된다”고 지적했다. 이 속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이데올로기는 시장·경제 만능주의라고 한다.
프랑스 경제사회 교과서 첫 장의 제목은 ‘다양한 사회관계’다. 여기에서는 공동체 관계, 상업적 관계, 사회관계와 정치적 관계를 차례로 제시하고,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시민공동체를 이루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룬다. 이것은 교과서 전체를 꿰뚫는 주제이기도 하다. 엄인수씨는 “프랑스 교과서가 어떤 시민을 길러낼지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는 반면, 우리 교과서에서는 어떤 주제의식도 읽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김원태씨는 “결국 ‘합리적 경제주체’로서 이익을 좇는 개인에 대한 강조만 두드러질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교과서 문제를 떠나, 어떻게든 학생들을 줄세워야 하는 현실만큼 교사들을 좌절하게 하는 것은 없다. 선택과목으로 변한 뒤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시간 자체가 줄어든 것을 두고, 교사들은 “‘입시’라는 거대한 관문 앞에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책이 공부 잘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논술 대비용으로 잘 팔릴 것이라는 현실적인 예측도 씁쓸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교사들은 희망을 접지는 않았다. 곧 프랑스 고등학교 3학년 교과서 번역 출간에 도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책은 왜곡된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어떤 방식으로든 충격을 줄 겁니다. 교사들의 노력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뭔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