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정혜윤의 새벽 3시 책읽기 /

〈워킹 푸어-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데이비드 K. 쉬플러 지음·나일등 옮김/후마니타스·1만9000원

선거날 아침에 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2002년 12월5일 눈 내린 아침, 워싱턴 교육감 폴 밴스는 학교를 평소처럼 열려고 노력했다. 15㎝에서 20㎝ 내린 눈으로 인접 지역의 학교들이 휴교 조처를 취하는 가운데 워싱턴 시내 학교들은 평소처럼 수업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던 것이다.

그때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모르고 있던 것을 폴 밴스는 알고 있었다. 즉 그는 그의 학군 내 아이들 대부분이 아침과 점심 식사를 위한 보조금을 받는 가난한 가정 출신이고 그날 아침 학교를 휴교시키면 많은 아이들이 배를 곯게 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개월 후 부시는 전국의 어린이들이 학교의 무료급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하는 예산안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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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야기를 <워킹푸어>란 책에서 읽었다. 워킹푸어는 어떤 사람들일까? 받고 있는 임금만으로는 도저히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 현재의 삶이 미래를 위한 삶이 되지 못하고 가난의 덫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사람들, 가난이 수반하는 모든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 우리가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주차장에서 패스트푸드점에서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 우리의 옷을 만들어 주고 우리의 메추리알을 까 주고 마늘을 세척하며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워킹푸어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팝콘을 한 봉지 살 때 우리는 콘을 튀기는 사람들, 봉지에 담는 사람들, 봉지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투명 인간이 아니고 꿈을 꾸고 슬퍼할 줄도 아는, 피가 흐르는 노동자란 것을 봐야만 한다.

그런데 부시의 정책 같은 일이 바로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다. 아동복지법이 개정되어서 자격을 갖춘 지역 아동 센터로 신고하지 못하는 영세 공부방들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의 한 표는 너무나 중요했다. 우리가 기만적으로 투표를 하면 그 영향을 받는 것은 저소득층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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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끝났어도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우리가 회복해야만 하는 태도가 있다. 바로 국가에 대해 의심하는 태도이다. 우리가 국가를 의심해야 하는 이유, 우리의 부끄러움 때문이다. ‘빈곤의 경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 사회의 번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지만 그들의 행복은 사회 전체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으로 다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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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눈물을 흘리며 악전고투하고 있다. 광범위한 빈곤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이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며 국가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약자를 지키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우리는 예이츠의 이 아름다운 시를 잊을 수 없다.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꿈밖에 가진 게 없어요// 그리고 나는 그 꿈을 당신의 발 밑에 펼쳐 놓았어요// 그러니 사뿐히 걸어 주세요. 내 꿈이 당신의 발 밑에 있으니까요.”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