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회복될 수 없다故 ○○○

일상은 회복될 수 없다

2020년 5월 14일. 늦잠을 잔 날처럼 이상하도록 화창한 햇살, 몸을 감싸는 묘한 공기, 그리고 저를 깨우는 오빠. 평소 저보다 늦게 일어나는 오빠가 아침에 저를 깨우고 있는 상황은 잠결에 생각해도 이상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들은 첫 번째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코로나19에 확진되어 돌아가신 건 아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새벽에 나가서 장례를 준비하고 계셨고, 저를 포함한 다른 가족들은 아침에 준비를 해서 장례식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저는 가자마자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주변인의 첫 번째 죽음이었기에 죽음이 실감되지는 않았습니다. 죽음이라는 게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에 나타났습니다. 저는 원래 다른 사람보다 기초 체온이 높은 편입니다. 아무 일이 없을 때도 체온이 36.9도이고, 피곤하거나 긴장을 하면 37.4도를 웃돕니다. 그날도 긴장을 한 탓인지 37.3도가 나왔습니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으로 분류되는 체온은 37.5도 이상이기 때문에 저는 코로나19 검사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장례식장 업주의 시선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태원 발 코로나 확산이 많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미성년자였지만 장례식장 업주에게 이태원 클럽 다녀왔냐는 말을 들으며 코로나19 고위험군으로 의심을 받았습니다. 결국 저는 장례식장을 떠나며,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마음속 한 편으로는 오히려 이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업주가 의심을 하니, 화도 나서 도망치듯 장례식장을 나왔습니다. 그 후로도 저의 도망은 계속되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그리고 화장을 하는 순간에도, 자연장을 하러 가는 길에도 저는 계속 도망쳤습니다. 그 도망은 2주기를 보낸 오늘까지도 이어졌습니다. 저는 아직 할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작은 코로나19로 인한 물리적인 비접촉이었지만, 그 후에는 코로나19 뒤에 저의 두려움을 숨기며 죽음을 마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죽음이 잘 체감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든 이제는 마주하려고 합니다. 코로나19는 끝나가고 제 일상은 조금씩 회복되겠지만, 할아버지의 일상은 회복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할아버지, 잘 가요.”

21분이 헌화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