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빨리 이승을 나설 줄 몰랐습니다故 김영하

이리 빨리 이승을 나설 줄 몰랐습니다

지난해 4월18일이니까, 못 뵌 지 일년이 조금 넘었군요. 한참된 거 같습니다. 동학의 근성을 얘기했고 농투산이의 질긴 생명력을 민들레처럼 얘기하던…, 그러던 형님인데. 그리 빨리 이승의 싸리문을 나설 줄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향불 하나 지피지 않고 쿨하게 돌아선 형님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슬픔은 남은 자의 것이라고 비석 행간에 새기셨죠. 그렇게 책임을 돌리고 가신 형님이 많이 섭섭했습니다. 저는 저승이나 다음 세계를 과히 믿는 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형님을 보내고 마땅하게 잔영이나 울림을 전할 곳이 막혔다는 사실에, 의도치 않게 한숨이 나오고… 그렇습니다. 지금요? 딱쟁이 앉은 자리 같아요. 신경이 무딘 정도라고 할까요. 굳이 예를 들자면 그렇습니다. 덤덤하게 나아가는 흉터의 자리에 형님이 있습니다.

형님이 떠난 일년 간의 여기는요, 그저 그래요. 윤석열 대통령 된 것은 큰 뉴스라 아실테고, 농업정책 얘기 잠깐 할까요? 제일 관심이셨고, 궁금하셨겠습니다. 요즘은 산지쌀값이 계속 떨어지네요. 정부가 시장격리용 쌀을 수매해도 효과가 없는거 같습니다. 양곡정책이 그때나 이제나 근본 대책이 안보입니다. 한미FTA 수준 이상의 농산물 수입 개방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CPTPP가 그렇습니다. 여기에 보태서 바이든이 들고 온 IPEF까지 혼란스럽습니다. 푸드플랜이나 농산물유통, 농업농촌 귀농 등은 구분이 사라지고 빅데이터, 플랫폼, 스마트, AI 등의 단어로 나열되면서 재편되고 있습니다. 일 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눈에 띄게 속도를 높이는 중입니다.

3장

요즘은 16년간 우리의 텃밭 농사가 자꾸 기억납니다. 엊그제 그곳을 지나갔는데요, 금계국이 샛노랗게 고추밭을 포위하고 있습디다. 돗자리 펴고 막걸리 흥건히 건네던 효종당 건너 비탈 아래 있죠? 거기는 임도를 내서 풍광이 영~ 아닙디다. 감자꽃 열심히 따던 이맘 때가 생각납니다. 영하 형님, 광운 형님, 클라리넷 불어주던 이해영 교수님까지, 우리들 얼굴이 하나같이 웃는 표정으로 그려집디다. 벌써 그리워지면 안되는데 그럽디다. 한달 뒤 여기저기 하지 감자 보일 때가 되면, 볕 따겁게 뻐꾸기만 남아 더운 소리 낼 때가 되면, 형님의 철 지난 사철가 한자락이 쉰 막걸리처럼 또 생각나겠습니다. 대나무 마디처럼 비 맞으면 매듭 사이가 길어지고 가물 때는 짧어지고, 민들레가 귀찮게 번지거나 감자꽃 엉성하게 올라오면, 그 지점에서 형님의 기억은 지금처럼 또 스치고 겹치고 새겨질 겁니다. 아마 계속 그렇게 지낼 겁니다.

영하 형님. 여러 친구 잘 사귀시고 잘 계세요. 먼 곳이 그리우면 가슴 부풀려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아무 때나 사철가 부르지 말고….

-김영하 형님 그리는 후배 유영선

※ <농어민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김영하 형님은 지난해 4월18일 코로나19로 돌아가셨습니다.

53분이 헌화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