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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버텨낼 밥맛의 따스한 추억, 삶의 꿋꿋한 힘

이랴! 이랴~!

1987년 5월의 한낮, 눈이 예뻤던 누렁소를 달래며 혼내며 외할아버지는 다랑논을 갈고 또 갈았다. 6월, 뒤엎은 논에 물을 대자 품앗이 온 마을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서 허리를 구부렸다. 작은 손으로 못줄을 잡아보겠다고 보챘지만, 못줄 잡기도 기술이라며 어른들은 손사래쳤다. 7월, 외할아버지는 잠자기 전 티브이에서, 아침 이부자리 정리하며 라디오에서 내일과 오늘의 날씨를 꼼꼼하게 챙겼다. 따가운 여름해 뜨기 전 외할아버지는 자전거 타고 밤새 논은 무사한지 둘러보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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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되자 외할아버지 이마의 주름은 더욱 짙어졌다. 태풍에 쓰러진 볏단을 엮어 세우느라 허리를 펴지 못했다. 9월의 황금 들판은 다랑논마다 펼쳐졌다. 무거워진 쌀알에 벼 허리는 부러질 듯 위태로웠고, 10월 들어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허리를 굽혔다. 묵묵히 벼를 베던 외할아버지의 입가엔 짧지만 깊은 미소가 간간이 스쳤다. 한해 여름을 살아낸 벼는 갓 지은 가마솥밥으로, 한가위 고향을 찾은 자식들에게 차려졌다. 자식들은 밥심으로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웠고, 그렇게 다시 기운을 낼 수 있었다.

이제 농부들은 사라져 간다. 쌀 소비도 줄어들기 시작한 지 오래다. 고봉밥 없어도 먹을거리가 지천이다. 쌀과 밥이 선 자리는 좁아져 간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패스트푸드, 저녁은 술과 고기…. 그렇게 사람들은 밥 없이 병들어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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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없어질 리 없다. 밥은 또다른 변신을 꿈꾼다. 흰옷 대신 원색 찬란한 드레스로 갈아입고, 가마솥 벗어나 최첨단 전기압력밥솥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밥맛 떨어지는 시절이 오고 또 와도, 그렇게 밥의 기억은 지워질 수 없다. 한국인의 몸속 깊이 뿌리박은 밥의 유전자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락모락 김 오르는 갓 지은 밥의 따스함으로 우리는 밥벌이의 지겨움을 버텨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밥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다. 밥은 삶이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30FB>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