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하르방 트로피.
완성된 하르방 트로피.

이번엔 다소 민감한 주제, 바로 ‘돈’이다. 단순하고도 복잡한 문제. 목공방을 해서 벌이가 됩니까? 괜찮습니까? 가까운 지인들이나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이 공방은 충분히 돈을 벌고 있는가. 이 공방은 지속 가능한가. 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완성도·디테일 내세우며 고민

우선 전제가 있다. 목공인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국은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공예 작업물의 가치평가에 인색한 사회다. 우드슬랩 테이블로 목공을 배웠으므로, 우드슬랩을 예로 들어보자. 인기가 많은 북미산 호두나무(월넛) 테이블의 경우 미국 현지에서는 당연하게도 훨씬 싸게 자재 수급을 할 수 있다. 작업물의 가격은? 한국보다 두배 이상 비싸다. 업체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겠으나, 완성품의 품질이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의 제품을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거다.

그러므로 이런 사업 모델도 가능해진다. 우드슬랩 가구 공장과 전시장 여러 곳을 운영하는 ‘밀레니엄 엔터프라이즈’의 곽덕환(50) 이사는 몇년 전부터 북미의 목재를 수입해 한국에서 우드슬랩 완제품을 제작하고, 이를 다시 미국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그가 바로 유명 블로그 ‘쇳덩이의 나무이야기’의, 그 ‘쇳덩이’다. ‘목공인’으로 유명한 류승룡·강동원 배우가 그의 ‘목공 친구들’이다. 자신들이 직접 사용하거나 지인에게 선물할 가구를 만들며 곽 이사와 도움을 주고 받는다고 한다. 미국의 나무로,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만든 제품이 시애틀과 애틀랜타,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전시·판매된다. 이 얼마나 웅장한 구상이란 말인가. 그것을 현실로 만든 ‘업계의 전설’은 이렇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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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크기의 월넛 테이블이 한국에선 250만~300만원선, 미국에선 500만~600만원선이에요. 한국에서 이 가격에 내놓으면 아마 소비자들이 외면하겠죠. 공산품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고, 대대손손 물려주며 사용할 수 있는 게 우드슬랩 가구입니다. 그 예술적 가치와 매력을 알아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가구를 고를 때 ‘가격’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얼마나 유니크한 디자인인가, 어떤 자재를 사용했고, 어떠한 기술과 노력이 더해졌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싼 물건인가’가 주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는 한 이 격차는 해소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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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받은 가구를 제작·납품하며, 혹은 도마 등의 소품을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 판매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도 사실 가격 책정이다. 끝없는 질문들 속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일단 ‘비용’은 빤하다. 나뭇값, 그리고 기계장비의 감가를 비롯한 여러 자질구레한 자재비. 이건 그냥 계산기를 두드리면 나오는 문제다. 문제는 그 ‘플러스알파’다. 아, 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가. 내 노동의 비용은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가? 나는 그 시간에, 이 작업에 돈을 받을 만큼 충실했는가? 인건비 외의 마진을 붙여도 되는가? 된다면 그건 얼마여야 하는가? 마진을 고려할 만큼 이 물건은 고객에게 충분히 쓸모 있고 아름다운가?

같은 자재를 쓴 다른 업체의 비슷한 물건(온라인 판매물품의 경우)이 기준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너무 싸다. 규모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가격경쟁력이 우선 작용할 것이다. 공급자들의 출혈경쟁 문제도 있다. 어쨌든 견적서의 빈칸을 노려보며 며칠이고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나로서는 도무지 맞출 수 없는 숫자다. 그리하여 ‘완성도’와 ‘마감의 디테일’을 내세우게 된다. 그건 마지막 자존심이므로. 완성도를 타협하고 가격을 낮춘다? 저렴한 오일이나 마감재를 사용할까? 5~6단계로 샌딩할 작업을 한두번만 하고 끝낼까? 도저히 못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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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른 공방의 사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소규모 목공방들이 돈을 벌기 쉽지 않은 이유다. 회사에 다니며 매달 월급을 받을 때는 미처 몰랐지. 귀찮기만 했던 연말정산은 6개월마다 돌아오는 부가세 정산 작업에 비해 얼마나 심플한 일이었는가. ‘이미 정해져 있는 시급과 연봉의 세계’에선 알지 못했던, 실존적 질문들에 매일 마주해야 하는 자영업자는 그리하여 오늘도 스스로 묻고 또 묻는 것이다. 내 노동의 가치는 도대체 얼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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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 목재 받침 하나에 2만5000원

트로피 받침을 제작하기 위해 하나하나 홈을 팠고 모서리를 모두 둥글게 다듬었다.
트로피 받침을 제작하기 위해 하나하나 홈을 팠고 모서리를 모두 둥글게 다듬었다.

누군가 ‘목공’을 업으로 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한다면 이런 방법도 있다. 인테리어나 목조주택 건축 현장에서 먼저 경험을 쌓는 일. 현장 목수보다 목공방의 소목이 ‘윗길’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부러워서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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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목수의 길과 목공방 창업의 길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여러 면이 그렇겠지만, 우선 갖춰야 하는 소양과 기술의 결이 다르다. 하지만 현장 목수라는 직업은 ‘이미 정해져 있는 시급과 연봉의 세계’에서 나무를 다듬고 만지는 일을 시작하며 배울 수 있다는, 매우 큰 장점을 갖고 있다. 현장에는 조공-기공-반장 등의 직함이 있다. 처음 일을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가 조공이다. 물론 힘들 것이다. 잡일도 도맡아야 하고 눈치도 볼 것이다. 하지만 조공으로 일단 출근하기 시작하면 일당이 들어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몇년 정도 기술을 배워 ‘기공’이 되면 어지간한 직장인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장르가 바뀌므로 또 배우고 익힐 것들이 많겠지만, 창업의 길은 그렇게 쌓인 노하우와 경험 위에서 걷기 시작할 수도 있다. 선택은 본인 몫이다.

무턱대고 공방부터 차린 초보 공방장은 ‘돈’이라는 난제 앞에서 자주 허덕인다. 지난달 서귀포의 한 체육단체의 의뢰로 트로피 받침(베이스)을 제작했다. 트로피 본체는 하르방과 물허벅(항아리의 제주어)을 진 여성상이었다. 본체를 끼워 넣고 상패의 내용 등을 각인한 동판을 붙일 받침을 목재로 하고 싶다고 해서 진행한 작업이었다. 자재는 두께 4㎝가 넘는 제주산 편백나무를 썼다.

트로피 본체를 받고 나니 밑면 부분의 모양이 불규칙하고, 미묘하게 서로 달랐다. 어차피 하나하나 정확한 깊이로 파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했고, 도색도 했다. 받침 28개를 제작했는데, 개당 2만5000원을 받았다. 물론 부가세는 별도로 붙는다. 이 가격은 적당한가? 싼가? 비싼가? 도무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더 쌓이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 보는 수밖에. 광야에 선 자영업자는 오늘도 그렇게 버틴다.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부여잡고, 묵묵히 나무를 깎아 나아가는 것이다.

글·사진 송호균 나무공방 쉐돈 대표
한겨레 기자로 일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2016년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했다. 본업은 육아와 가사였는데, 취미로 시작한 목공에 빠져 서귀포에서 목공방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