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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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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과 법적 혼인 외 관계로 자녀를 출산한 외국인 여성은 법률혼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출생등록, 국적취득 등은 물론 영유아 복지 서비스에서 배제된다.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비혼 외국인 여성의 양육을 지원하는 ‘국민의 양육자’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비혼 외국인 여성 양육 지원을 위한 ‘국민의 양육자’ 개념 도입 제안’ 보고서를 7일 보면, 보고서는 국내에서 유사 ‘코피노’ 문제가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코피노’는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다. 필리핀에 방문해 현지 여성과 자녀를 가진 뒤 책임을 다하지 않는 한국 남성의 사례가 오래 전부터 사회문제로 제기돼왔다. 코피노 자녀를 방치한 한국인 부모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양해들·구 배드파더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다. 보고서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학업·근로 등의 사유로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여성이 법률혼 관계가 아닌 한국 남성과 아이를 출산한 이후, 친부로부터 외면받아 아이의 출생신고부터 체류 등 자녀 양육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짚었다.

우리나라 국적법은 한국인 친부를 둔 국내 출생 아동이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하지만, 부모가 법률혼 관계가 아니라면 자녀가 별도로 국적을 취득해야 한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은 법률혼 관계에 있는 가족만을 다문화가족으로 인정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혼 외국인 여성은 자녀의 출생신고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라오스·네팔 등은 남성이 출생신고 의무자여서 신고가 어렵고, 한국에 대사관 등이 없어 신고하지 못하는 나라도 있다. 친부가 출생신고를 거부하면 재판을 통해 친자관계를 인정받아야 한다. 보고서는 “재판 이후에도 외국인 등록 과정에서 친부의 가족관계증명서, 동의서 등 서류가 요구돼 친부의 지속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짧게는 2개월부터 1년6개월까지 소요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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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외국인 여성이 법률상 미등록 이주여성일 경우 양육 환경은 더 악화한다. 한부모가족지원법은 등록 외국인에게만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외국인 여성의 체류 기간이 초과했다면 최대 3천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체류자격 심사를 받을 수 있다. 보고서는 “양육비를 받지 못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미혼모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금액”이라고 했다. 체류자격 심사를 마쳤더라도 친부가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등 협조하지 않으면 자녀양육(F-6-2) 비자를 받기 어려워진다. 이럴 경우 방문동거(F-1) 비자를 받을 수 있는데, 원칙적으로 취업이 불가능해 자녀 양육이 더 어려워진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제 도입, 영유아복지 관련 3법 개정, ‘국민의 양육자’ 개념 도입이 제시됐다. 보고서는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제 도입은 비혼 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이 친부의 인지 거부 등으로 인해 미등록 아동으로 남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22대 국회에 관련 법 4건이 발의됐지만 계류 중이다. 이외에도 보고서는 “아동이 국적 취득 전이라도 복지 법률의 지원 대상에 명확히 포함될 수 있도록 영유아복지 3법(영유아보육법·유아교육법·아동수당법)에 ‘국적 취득 절차를 밟고 있는 아동’을 명시적으로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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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양육자’ 개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한국 국민과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국민의 배우자’ 개념은 체류자격 부여 및 각종 복지서비스 지원 대상의 근거가 된다. 이에 대한민국 국적자인 아동을 양육하는 외국인에게 ‘국민의 양육자’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자녀 양육 기간 동안만이라도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며 “한국 국적 혼외자 아동을 양육하고 있는 경우라면 친부와의 사실혼 관계 등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라도 자녀양육 체류자격을 부여하거나 새로운 자격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