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
0:00
산민(山民) 한승헌 선생을 추모하는 3주기 추모식과 1회 산민상 시상식이 18일 전북 진안군 진안문화의집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한창민 국회의원, 김선수 전 대법관, 장미희 배우, 직장갑질 119 정현철 사무국장, 권두섭 직장갑질 119 후원위원장, 장영달 우석대 명예총장, 윤석정 산민 한승헌기념회 이사장, 전춘성 진안군수. 천경석 기자
산민(山民) 한승헌 선생을 추모하는 3주기 추모식과 1회 산민상 시상식이 18일 전북 진안군 진안문화의집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한창민 국회의원, 김선수 전 대법관, 장미희 배우, 직장갑질 119 정현철 사무국장, 권두섭 직장갑질 119 후원위원장, 장영달 우석대 명예총장, 윤석정 산민 한승헌기념회 이사장, 전춘성 진안군수. 천경석 기자

“절망의 생명을 어루만지던/ 불운한 수인의 대부/ 당신은 결코 흙으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온 누리 음지의 영혼 속에서/ 상록의 무성한 모습으로/ 두고두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당신은/ 법복만이 아니라 성의의 모습으로/ 우리들 마음속에 영생하는 것입니다.”(한승헌, 어느 대부에게)

1세대 인권변호사 산민(山民) 한승헌 선생을 추모하는 3주기 추모식이 18일 고향인 전북 진안군 진안문화의집에서 열렸다. 3주기를 맞아 처음 제정된 1회 산민상 시상식도 개최됐다. 한승헌 선생을 기억하는 3백여명의 시민이 이곳을 찾아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배우 장미희는 “한승헌 전 감사원장님을 뵙게 된 그 이후부터 제 삶의 가장 큰 멘토로서 그의 눈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자 했다”며 “아직 원장님의 부재를 사실로 받아들일 만큼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한승헌 선생이 생전에 쓴 시 ‘어느 대부에게’를 낭독하며 북받치는 울음을 삼켰다. 그는 “이 시가 제 마음과 같았다. 모두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며 “선생께서는 고 김홍석 판사님 영전에 바치는 시라고 하셨지만, 선생은 자신의 뒷모습을 남기려 한 시 같다. 더 그리워진다”고 했다.

광고

추모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각자 서로가 기억하는 한 변호사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야기 나누고,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했다.

올해는 한승헌 변호사의 인권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호를 딴 ‘산민상’도 제정돼 의미를 더했다.

광고
광고

산민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선수 전 대법관은 “한승헌 선생님과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창립회원으로서 인연을 맺었다. 이후에도 같은 진안 출신이라고 신경을 써주셨다. 사서 고생하는 삶을 살았고, 선생님께서 걸어오신 인권의 길이 너무 빛났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수상자를 결정해야 하는 무거운 짐이 어깨를 눌렀다”고 했다.

1회 수상자는 직장갑질을 공론화하고 비정규직 인권보호를 위해 앞장선 ‘직장갑질 119’가 선정됐다. ‘직장갑질 119’는 노무사, 변호사, 노동단체 활동가 등 200여명의 봉사자로 운영하는 단체로, 2017년 창립 이후 현재까지 하루 평균 80여건, 누적 10만여건의 상담을 하고 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제정에 큰 힘이 됐다. 상금으로 1000만원이 주어졌다.

광고

권두섭 직장갑질119 후원위원장은 “한승헌 선생은 모든 법률가들이 존경하고 또 흠모하는 그런 큰 어른”이라며 “굴곡진 현대사에서 무고하게 옥고를 치르면서도 항상 후배들을 만나면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았고, 인권 옹호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 온 분이다. 그런 한승헌 변호사님을 기리는 1회 산민상을 받게 돼 너무나 큰 영광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산민 한승헌기념회를 이끄는 윤석정 이사장은 “인권의 상징 한승헌 변호사는 진안을 넘어 대한민국의 자랑이고 세계적인 인물이다”면서 “지난달에 고향 진안군 안천면에 한승헌로 명예도로명이 지정돼 무척 감회가 새롭다. 한승헌 선생의 고귀한 뜻이 널리 알려지고 오래도록 선양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1934년 전북 진안군 안천면에서 태어난 한 변호사는 전주고와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57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검사로 근무했고, 1965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 분지 필화사건, 동백림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도맡아 변론했다. 또 감사원장, 사법개혁추진위원장, 국민주로 만들어진 신문 ‘한겨레’ 창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8년에는 민주화운동과 사법개혁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고인은 생전에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지켰던 변호사’, ‘저작권법 전문가’, ‘꼼꼼한 기록가’ 등으로 불렸다. 평소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는 좌우명으로 살았다. 이 문구는 광주 5·18민주묘지 그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시국사건을 술회한 저서를 펴내는 등 활발히 활동하다가 2022년 4월20일 88살로 별세했다.

천경석 기자 1000pr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