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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경찰이 완전히 파괴된 차량 한 대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경찰이 완전히 파괴된 차량 한 대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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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에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하는 사고로 9명이 숨진 가운데 ‘급발진 가능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인다.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으나 차량이 말을 듣지 않았다”며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운전자에게 불리한 정황이 더 많다고 보고 있다. 급발진은 운전자 의도와 무관하게 차량이 급가속하는 현상으로 아직 뚜렷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 서서히 멈췄는데 급발진?

전문가들은 급발진 사고 차량의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갑작스러운 가속과 충돌(마찰력)에 의한 멈춤’을 꼽는다. 실제 2011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운전 중 70대 할머니를 숨지게 한 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뒤 차량 결함(급발진) 등 가능성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당시 운전자의 차량은 전신주·다른 차량과 잇달아 충돌하고도 멈추지 않다가 엔진이 1분 넘게 굉음을 울린 뒤 겨우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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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1일 사고 당시 상황을 보면, 차량은 무서운 속도로 인도에 돌진하지만, 통상의 급발진 추정 사고들과 달리 서서히 멈춰 선다. 급발진연구회 회장인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는 2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중간에 짧게 급발진이 생겼다가 정상으로 돌아갔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통상적이지는 않다”며 “사고 직후 운전자가 의지를 가지고 차를 세우는 제동 영상은 차량의 정상 작동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있어 운전자에게 불리한 정황”이라고 했다. 이어 김 교수는 “짧은 구간에서 사고가 날 경우 보통의 사람은 머리가 하얗게 돼 기억을 전혀 못 하고 그럴 때 급발진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자동차리콜센터에 접수된 급발진 의심 사고는 최근 5년간(2019∼2023년) 136건, 올해는 5월까지 3건 있었다. 이는 신고자가 급발진 의견을 낸 신고 내용을 모은 숫자일 뿐,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 실제 인정된 사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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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단편적인 정황만으로는 가해 운전자의 과실 여부를 따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급발진 의심 사고 피해자의 변호를 여러 차례 맡아온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는 “이 사고의 원인이 급발진인지 페달 오조작인지 판단하려면 가속이 시작될 때 운전자의 대처 방식이나 충돌회피 운전을 했는지, 피해자를 친 뒤의 진행 경로는 어떤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며 “사고의 전체 영상을 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건 단면만 보는 섣부른 판단”이라고 말했다. 사고 차량이 피해자를 친 뒤 천천히 정차한 점에 대해서도 하 변호사는 “급발진으로 고장 났던 브레이크가 큰 충돌 이후 소프트웨어 리셋을 통해 정상으로 돌아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사고기록장치(EDR) 분석 등을 의뢰해 급발진 여부를 파악할 예정이다. 사고기록장치는 충돌 전후로 차량의 속도 변화나 브레이크 작동 여부, 엔진 회전수 등을 기록해 사고 발생 원인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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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굉음·제동등 여부도 중요

급발진 증상 중 하나인 ‘굉음’이 발생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급발진 경우엔 처음 들어보는 수준의 굉음이 발생한다고 이야기한다. 사고 목격자들은 “가스통 터지는 소리” “벼락 소리” 등을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당시 굉음이 차량 충돌로 인한 소음인지 차량 내부에서 발생한 소음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사고 당시 차량의 제동등(브레이크등) 확인도 필요하다. 다른 장치를 거치지 않고 브레이크 페달과 바로 연결된 제동등은 시동 여부와 관계없이 페달을 밟으면 바로 점등되는 구조여서, 급발진과 오조작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으로 꼽힌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자동차학)는 “가해 운전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려면 사고 당시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브레이크등이 들어왔다는 것을 입증할 영상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그동안의 급발진 의심 사고들은 그런 증거를 내놓지 못해서 운전자 승소 사례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 고령 운전 논란도

한편 운전자가 60대 후반이다 보니 ‘고령운전’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을 보면, 지난해 기준 전체 교통사고 가운데 가해 운전자가 65살 이상 노령층인 사고의 비율은 약 2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2014∼2023년) 합계 교통사고 치사율(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도 65살 이상은 2.6명으로 전체 평균(1.7명)보다 크게 높았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