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10일 기묘한 논리로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은 1심 재판부보다 더 ‘과감한’ 논리로 주요 혐의를 털어줬다. 이번 판결은 전환사채 등의 편법발행을 통한 시장질서 파괴와 회사 이익 침해에 대한 배임죄의 기본적 처벌 논리를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발행은 둘 다 치밀한 계획 아래 이 전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그룹 경영권을 세금 없이 물려주고 막대한 불로소득을 안겼다는 게 특별검사의 수사 결론이었다. 1심 재판부는 에버랜드 사건은 형식적으로라도 기존 주주들에게 전환사채 인수 의사를 물었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단했다. 에스디에스 사건은 불법적 제3자 배정이지만 이득액이 50억원 미만이어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 판결했다. 2심 판결을 앞두고 법조계 한쪽에서는 에버랜드 사건의 경우 삼성 구조조정본부가 기존 주주들의 실권을 사전에 계획했고, 에스디에스는 당시 적정 주가가 1심의 추산보다 훨씬 높다는 증언이 나왔다는 점을 들어 무죄 선고가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주주 배정이든 제3자 배정이든 회사에 손해가 없으므로 죄가 안 된다’는 논리로 이런 난점들을 피해 갔다. 재판부는 “배정 방식과 상관없이, 저가로 발행해 기존 주주들이 손해를 봐도 그만큼 신규 주주들이 이익을 얻게 돼 결과적으로 회사에 끼친 손해는 없다”며 “민사소송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배임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관련자들이 회사에 돈이 더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정도일 뿐이고, 제3자 배정으로 주식 가치가 물타기 된 데 대해서는 기존 주주들이 민사소송으로 손실액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회사 편에서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비슷한 사건에서 실제 주식 가치와 저가 발행액 사이의 차액을 회사의 손실로 봐 배임죄로 처벌한 대법원 판례와 정면으로 어긋난다. 또 법인격을 가진 회사가 이런 수법에 의해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는 견해는 배임죄의 법리나 대표이사 등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에 관한 기존 법해석을 무력화시키는 판결이다. 당장 회사 자산을 빼가지 않는다면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위험한 논리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우려스럽다. 회사 가치의 표현인 주식을 제3자에게 이익을 안겨줄 목적으로 현저히 싼값에 넘겨 수백억의 기대이익을 포기하게 만들어도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재판부는 유죄 판결한 조세포탈 혐의에서도 ‘고전적’ 양형 논리를 댔다. 재판부는 “삼성전자 등을 세계적 기업으로 변모시키는 등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사업보국’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점 등”을 집행유예를 붙이는 이유로 언급했다. 이학수 전 부회장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집행유예 처벌을 받은 전력 외엔 없는 점”을 유리한 요소로 들며 벌금형을 없애 줬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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