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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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정치 양극화와 혐오 정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피의자 김아무개(67)씨의 범행 동기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사건 자체를 혐오 정치의 산물이라고 단정하기엔 이르지만, 양극단의 지지층이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증오를 부추기고 가짜뉴스를 양산하며 여론몰이에 나서는 양상이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탓이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바탕엔 대의 민주주의의 실행자인 여야 정치인끼리는 말할 것도 없고 친명 대 비명, 친윤 대 비윤 등 내부 계파별로도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악마화하며 스스로 민주주의를 부정해온 정치인들의 ‘원죄’가 자리잡고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피습 당일인 지난 2일 ‘이봉규 티브이(TV)’를 비롯한 일부 극우 유튜브 채널 등에선 피습 사건이 이 대표 쪽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폈다. ‘가짜 칼’ ‘가짜 피’라는 가짜뉴스도 퍼져나갔다. 같은 날 국민의힘 대전시당 신년인사회에선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방금 이재명 대표가 괴한으로부터 피습당했다는 뉴스를 봤다”고 하자 환호와 박수가 나왔고, “쇼입니다!”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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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강성 지지층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3일 민주당 온라인 당원 게시판 ‘블루웨이브’와 이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등에는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부정적인 여론을 덮으려는 것” “피습의 배후는 윤석열” 등의 주장이 올라왔다.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로 습격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로 습격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피의자 김씨의 사진과 운영하던 부동산의 위치를 공유하며 “죽이러 가자” “광화문 네거리에서 공개처형해야 한다”고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김씨를 이 대표의 “시해범”으로 지칭하며 “몰살시켜주시면 감사”하다는 글이 공유되기도 했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근거 없는 음모론이 퍼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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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 팬덤이 경찰과 민주당의 공식 발표를 부정하고, 증오심을 부추겨 여론 선전·선동에 나서는 이런 현상은 정치 양극화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힌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적개심에 기댄 혐오 정치가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고, 여기에 올라탄 강성 팬덤이 막장 정치를 더욱 확산시키게 됐다는 것이다.

피의자 김씨가 ‘태극기 집회’에 자주 참석했다는 점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한겨레에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팬덤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팬덤정치가 양극단으로 치닫다 보니 혐오가 증오정치로 악순환하면서 ‘정치 테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정치 지도자들이 서로 남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상황에서,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극단적으로 표현해야 자기 얘기를 들어준다고 생각한 거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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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오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구·경북(TK)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넥타이를 풀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오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구·경북(TK)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넥타이를 풀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는 이날 일제히 ‘반성문’을 내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이 대표) 피습 사건은 대의 민주주의 전체에 불행한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여야 모두 독버섯처럼 자라난 증오정치가 국민께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 정치문화를 혁신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혐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정치인들의 선을 넘나드는 막말이 지지자는 물론 일반 시민을 자극하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한 혐오로 번졌다”고 짚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얼마나 갈지는 의문이다. 여야는 지난해 10월24일에도 국회 회의에서 고성과 야유·손팻말을 퇴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신사협정’을 맺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12월28일 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총선용 특검”이라고 소리쳤고, 민주당에선 “그 정도 (항의)해서 공천받겠느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에서 “지금은 광기의 시대”라며 “정당의 대표나 중진들이 원고를 보고 얘기하는 걸 가만히 보면, 굉장히 폭력적인 어휘가 많다. 실무자들이 써 올린 걸 보고 읽는 것 같은데, 정치 지도자들이 언어 순화부터 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가 앞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