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교역이 24일 전면 중단됐다. ‘북방정책’을 표방했던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세계적 냉전체제 붕괴의 흐름을 반영해 남북 사이 최초의 경제협력 형태로 등장한 지 22년여 만이다. 그동안 남북관계의 여러 고비 속에서도 남북교역은 단 한 차례도 완전히 명맥이 끊긴 적이 없었다. 이번 조처로, 개성공단을 빼면, 남북 간 교류·협력은 전두환 정부 이전의 냉전시기로 완벽하게 후퇴한 셈이 됐다.
88년 첫 물품 반입·92년 위탁가공 시대북, 연간 2억6천만달러 규모 타격 예상“당장 처벌위해 남북관계 허무는건 단견”

남북교역의 모태는 88년 ‘7·7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이다. 노태우 정부는 이 선언을 통해 “분단의 벽을 헐고 모든 부문에 걸쳐 (남북) 교류를 실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노태우 정부는 북쪽 공작원들의 1987년 11월 말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이 벌어진 지 7개월여 만에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이 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1988년 10월엔 남북교역을 허용하는 ‘남북 경제개방 조치’가 발효됐다. 이어 한 달여 만인 11월 북한 도자기 519점이 최초로 ‘반입승인’을 받았다. 또 현대그룹이 북한산 모시조개 40㎏을 국내로 들여오는 등 활기를 띠게 된다. 89년 6월에는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지침’이, 90년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과 남북협력기금법이 각각 제정되는 등 제도적 뒷받침도 착착 진행됐다. 그 결과 89년 1900만 달러에 그쳤던 일반교역 반입액은 2009년 2억4519만 달러로 늘어난다. 지난해 위탁가공 교역 반입액도 2억5404만 달러에 이르렀다.
교역 형태도 단순교역에서 남쪽의 원자재를 북쪽에서 가공해 들여오는 ‘임가공 교역’, 직접투자를 통한 합영공장 설립 등으로 다양화한다. 92년 10월 코오롱상사가 셔츠 6200벌을 반입해, 대북 위탁가공의 첫 사례로 기록됐다. 같은 해 ㈜대우는 처음으로 남북협력사업자 승인을 받아 남포에 의류 합영공장 설립에 들어갔다.
남북교역을 중단하는 이번 정부 조처로 북쪽이 입을 경제적 손실은 일반교역액 중 10%가량의 보험·운송료를 뺀 2억2000여만 달러, 위탁가공 반입액 중 3000만~3500만 달러 정도로 추정되는 임가공료와 900만 달러 가량의 운임 수입 등 2억6000만 달러 안팎이 될 것으로 통일부는 보고 있다. 교역 중단에 따른 북쪽의 고용 감소와 대외무역 위축도 상당할 것으로 통일부는 예상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우리 경제 규모로는 미미하지만, 북한의 경제규모로 보면 상당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도”라며 “일반교역이나 위탁가공이 중지될 때 북한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북한 내부적으로도 이번 도발에 대한 평가가 다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22년간 이어져 온 남북관계의 주요한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는 데 따른 부정적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 대북경협 기업 관계자는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간 적대구조를 완화하고 통일 기틀을 만든다는 기존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당장의 처벌을 위해 장기적인 남북관계의 틀을 허무는 것은 단견”이라고 비판했다. 수백여 곳에 이르는 남쪽 교역업체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남쪽 업체 중 교역보험에 가입한 곳은 1곳에 불과하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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