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25일 노동당 9차 대회 연설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으며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25일 노동당 9차 대회 연설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으며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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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노동당 9차 대회에서 밝힌 대남·대미·핵 전략의 핵심은 북한 체제를 지키자면 ‘핵무장’과 함께 남북 사이에 ‘담’을 쌓아야 하고, ‘발전’을 도모하자면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결국은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총비서의 이런 인식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지만, 5년 뒤 노동당 10차 대회 때까지 견지할 ‘전략 기조’로 재강조했다는 게 문제다. 김 총비서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재명 정부 임기 중 남북 교류협력과 당국 간 대화 재개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총비서의 당대회 연설에서 도드라지는 대목은 2023년 12월 노동당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자신이 처음 밝힌 ‘반통일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이 “일시적인 전술적 조치가 아니라 역사적인 선택”이자 “결론적”이라고 대못질을 했다는 점이다. 남한을 “철저한 적대국, 영원한 적”으로 규정하고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남북관계에 ‘단절의 벽’을 쌓으려는 게 ‘한국발 체제 위협’ 때문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조선반도를 ‘자유민주주의’의 자본주의반동체제로 변신시킬 야망”, “‘조선반도비핵화’ 간판 밑에 무장해제 획책” 등을 문제 삼았다. 그러고선 “역대 한국 집권세력들은 음흉하게도 화해와 협력의 기회를 통해 우리 내부에 저들의 문화를 유포시키며 우리 체제의 붕괴를 기도해왔다”고 주장했다. 흡수통일·체제붕괴를 막고, 북한 청년층 사이에 유행이라는 한국 드라마·영화·노래의 확산이 초래할 ‘사상 오염’을 피하자면 ‘차단 벽’을 쌓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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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을 “서투른 기만극”이라 폄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길게는 탈냉전 30여년, 짧게는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교류협력이 기대와 달리 북한 경제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체제 위협’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 것이다. 그가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추진한 2018∼2019년 남·북·미 정상 외교가 최종적으로 실패한 데 따른 ‘한국 역할론 회의감’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김 총비서의 대남 기조가 전적으로 호전적이지만은 않다. 이 점은 “한국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와의 모든 것을 단념하고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한 데서도 드러난다. 서로 대화하지도 싸우지도 않는 ‘차가운 평화’가 그가 바라는 남북관계의 미래상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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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미국에 대해선 “주권국가들에 침략과 무력사용을 일삼는 특급불량배”라 규정하고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사실상의 ‘대화 신호’ 발신이다. 물론 여기엔 전제가 있다. “헌법에 명기된 우리 국가의 현 지위”, 곧 헌법 58조의 “책임있는 핵보유국, 핵무력 발전 고도화”의 인정과 함께 “대조선적대시 정책 철회”, 달리 말하자면 한·미 군사연습과 미국의 전략무기 한반도 배치 중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체제 발전을 도모하자면 패권국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도 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김 총비서의 이런 메시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3월 말 중국 방문을 계기로 대화를 하고 싶지만 “평화공존과 영원한 대결” 중 어느 길을 갈지는 미국이 선택하라는 ‘공 넘기기’다. 이와 관련해 그는 “대외활동을 주동적·책략적”으로 펼치겠다고 밝혀, 일단은 군사적 갈등보다 ‘외교’ 쪽에 힘을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경주 아펙(APEC) 회의 참석을 전후해 김정은 총비서에게 여러차례 만남을 적극 제안했지만 화답하지 않은 것처럼, 이번에도 긴장 완화를 위한 미국의 군사적 선제 조처가 없다면 만날 뜻이 없음을 거듭 강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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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