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핵시설 2개소.”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내란 사건 수사 특별검사팀이 2024년 10월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 관련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일반이적죄를 적용하면서, 근거 중 하나로 밝힌 여인형 메모 중 일부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찾아서 공략”해야 하며 “체면이 손상되어 반드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타기팅”이 필요하고, 그 타깃에는 ‘평양, 삼지연’과 함께 ‘핵시설 2개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핵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으로 “반드시 대응할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는 거다. ‘핵시설에 대한 공격에도 핵 공격으로 절대 대응하지 않겠다’는 북한 당국의 확답을 듣지 않은 이상, 이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핵 공격에 노출되는 것쯤은 감수하고 이런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는 거다.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 당국자들이 딱 이만큼만 제정신이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핵 공격의 위협이 있다는 첩보를 접하고 이를 막으려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는, 국내외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하지만 영화에서조차 그 범죄자는 기껏해야 미치광이 테러 집단 수괴나 전직 군인, 혹은 전직 정보기관 종사자 정도로 그려졌다. 합법적으로 선출되어 현직에 있는 공직자가 핵 공격의 위협을 알면서도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실행했다는 시나리오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특검에 의하면 영화적 상상력조차 훌쩍 뛰어넘는 그런 일이 한해 전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다는 거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해나 아렌트는 말했다. 다정한 아빠였고 친절한 이웃이었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유대인 집단 학살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던 이유는 생각하는 능력의 상실 때문이었다고. 히틀러의 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했던 이들은, 특별히 인지 기능이 떨어지거나 평소 악마적 인성을 지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자들이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끔찍하리만큼 정상적인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를 거부한 채 ‘나는 그저 명령에 따르는 것일 뿐’이라는 논리로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할 때, 대규모 악은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다.
하지만 이건 기껏해야 김용대 전 드론작전사령관, 이승오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정도에 해당하는 설명이다. 특검은 이들이 윤석열, 김용현, 여인형의 명령이 어떤 의도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명령을 수행했다고 보았다. 물론 이들도 범죄에 가담한 죄로 기소되었다. 명령권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원칙을 지켜 헬기 통과를 지연시켰던 군인도 있었고 자신의 부대가 서강대교를 넘지 못하도록 막았던 군인도 있었다. 김용대, 이승오는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고 결정했던 군인들과 달리, 생각하지 않고 ‘명령을 수행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실행한 윤석열은? 윤석열이 어떤 내면적 이유에서 이런 짓을 벌였는지를 우리가 굳이 이해해줄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가 아무런 절차적 하자 없이 선출된 최고 권력자였다는 점이다. 또 그가 재임 기간 그의 공적 권한과 자신의 명령에 따르는 공권력을 활용해 이런 엄청난 짓을 벌이는 동안 우리 대부분이 몰랐다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자를 또 선출할 수 있고, 선출 공직자인 누군가가 이런 미친 짓을 벌이는 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을 수 있다. 불행히도 우리가 채택한 민주정의 헌법 질서에서 이런 위험을 0으로 만들 방법은 없다. 수천만 유권자들이 2022년 대선에서 그를 선택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그자를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았을 때, 아무도 그가 1년 반 뒤에 그런 짓을 모의하고 또 1년이 더 지나 실행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런 위험은 상존한다. 다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범죄에 알거나 모르고 가담한 자들에게 각각 적절한 법적 책임을 묻고, 그런 자를 대선 후보로 공천해 놓고 사후 책임조차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치 집단에 정치적 책임을 지워 반면교사로 삼는 일이다. 그리고 두고두고 이 일을 곱씹으면서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시민의식을 함께 키워 앞으로 올 위험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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