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미국이 독일, 소련과 경쟁하면서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핵무기를 개발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21세기에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범용인공지능(AGI) 개발이 핵무기 개발 경쟁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21세기 핵무기’인 인공지능 기술에서 앞서나가려는 미-중의 경쟁은 점점 더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 베이징의 첨단기술 단지인 ‘중관춘 소프트웨어파크’에 있는 레노보(롄샹) 본사 입구에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AI for all) 문구가 설치되어 있다. 베이징/박민희 선임기자
중국 베이징의 첨단기술 단지인 ‘중관춘 소프트웨어파크’에 있는 레노보(롄샹) 본사 입구에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AI for all) 문구가 설치되어 있다. 베이징/박민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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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인공지능’(AI for all).

지난해 11월 말 중국 베이징의 첨단기술 단지인 ‘중관춘 소프트웨어파크’에 있는 레노보(롄샹) 본사에 갔을 때, 입구에 설치된 대형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세계 최대 컴퓨터 제조업체로 유명한 레노보지만, 이제는 인공지능(AI)과 로봇 연구 개발이 최우선 과제다. 중국 주요 첨단기술 기업들은 모두 인공지능 개발과 활용에 사활을 걸고 있다.

첨단공장들에서는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로봇이 노동자들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중국 전기자동차 공장은 산업용 로봇이 즐비하고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중국 전기차가 생산 원가를 파격적으로 낮추면서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중국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와 니오(웨이라이) 공장에서 업무의 약 70%를 이미 로봇이 담당하고 인간이 30%를 담당하고 있는데, 곧 10% 정도만 남기고 인간형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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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미국의 치열한 패권 경쟁의 최전선은 인공지능과 로봇, 그것을 가동시키는 첨단 반도체다. 과거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군사력 경쟁이었지만,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의 핵심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첨단 과학기술에 의해 결정된다고 양국 지도자들이 앞다퉈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은 미국에 1~2년 정도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추격 속도가 숨 가쁘다. 미국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지난해 8월 보고서에서 “중국이 인공지능에 대한 끊임없는 추진력과 전략적 투자로 미국을 따라잡거나 능가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중국의 인공지능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공개한 대규모 언어모델(LLM) ‘딥시크 V3’는 미국을 ‘딥시크 쇼크’에 빠뜨렸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딥시크 V3’는 저사양 반도체를 이용해 적은 비용을 들여 개발했지만 미국 경쟁사보다 오히려 앞선 기능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가 중국의 인공지능 굴기를 막으려고 고성능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해왔는데도 중국이 이를 기술 혁신으로 극복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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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특히 인공지능 개발에 핵심인 인재와 데이터에서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중국의 인공지능 연구자는 41만명(2022년 기준)이 넘어, 2위 인도(19만5000명)와 3위 미국(12만명)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이달 초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지난해 세계 3대 인공지능 학회가 채택한 논문을 분석한 결과, 등재 저자 수가 많은 상위 10개 기관 중 중국이 4곳으로, 미국(6곳)을 바짝 추격했다고 보도했다. 가장 많은 인공지능 논문 저자를 배출한 곳은 미국 구글이었지만, 2위는 칭화대였고, 베이징대, 저장대, 상하이자오퉁대도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중국은 14억 인구에서 축적되는 방대한 데이터와 거대한 시장을 활용해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안면인식, 결제시스템, 의료 등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해 인공지능 개발에 활용한다. 틱톡으로 유명한 바이트댄스(쯔지에탸오둥)가 2023년 6월에 운영을 시작한 인공지능 앱 더우바오(豆包) 이용자는 지난해 10월 5130만명으로 챗지피티(GPT)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알리바바그룹 산하 금융회사 앤트그룹이 지난해 9월 공개한 인공지능 앱 즈샤오바오는 10억명 이상이 사용하는 결제 서비스 즈푸바오와 연동되어 있다. 신화통신과 인민망 등 중국 관영언론들도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을 활용해 전세계를 향해 엄청난 양의 중국발 뉴스를 발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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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술 전문가인 백서인 한양대 교수는 “인공지능과 반도체 기술에서 미국이 분명 앞서 있지만, 응용과 활용 측면에서 중국이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미국은 서비스업 중심이어서 인공지능 적용의 효과가 곧바로 대폭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라서, 인공지능과 로봇을 적용해 곧바로 노동력을 대체 하고 생산 단가를 낮추는 데 유리하다. 일상생활에서의 인공지능 활용도 중국이 훨씬 광범위하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의 효과에 대한 의구심도 나오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대다수가 인공지능은 무조건 가야 할 길로 보고 있다.”

상하이 창장로봇밸리에 산업용 로봇이 전시되어 있다. 상하이/박민희 선임기자
상하이 창장로봇밸리에 산업용 로봇이 전시되어 있다. 상하이/박민희 선임기자

전문가들은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발달할수록 전세계 경제·기술·안보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지고, 다른 나라들이 멀리 뒤처지는 구도가 고착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과 중국만 자체 플랫폼과 클라우드를 통해 인공지능 개발에 필요한 천문학적인 규모의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이유는 인공지능이 21세기 패권 경쟁을 좌우할 군사력 경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성균중국연구소 주최로 열린 ‘전환시대의 중국과 미래’ 학술회의에서 자오밍하오 푸단대 교수는 미-중 경쟁의 키워드로 ‘지정학적 기술’(geo-technology)을 강조했다. 지정학적 기술은 인공지능과 로봇 등 기술적 요소가 국가의 안보 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개념이다. 우선, 인공지능 등 기술 수준은 국가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둘째, 첨단 기술기업이 강대국 간 전략적 경쟁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의 화웨이, 미국의 구글, 테슬라, 팔란티어 같은 기술기업은 미-중 지정학적 경쟁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행위자로 등장했고, 경제, 군사력, 일자리, 노동의 의미, 강대국 경쟁의 구도를 바꿔나가고 있다. 셋째, 기술을 중심으로 한 동맹이나 진영 구축이 강대국 경쟁의 초점이 되고 있다고 자오 교수는 강조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결성한 쿼드나 오커스(AUKUS, 오스트레일리아·영국·미국 협의체) 등은 군사동맹 역할뿐 아니라, 군사적 응용 가능성이 있는 기술을 함께 개발하고 공유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 모두 상대편에게 인공지능의 우위를 빼앗기면 군사, 안보, 경제에서 모두 패배자가 된다는 절박함과 초조함에 쫓기고 있다. 특히 군사 분야가 초점이다.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는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중국이 인공지능에 힘을 쏟는 것은 경제적 목적뿐 아니라 자율형 무인무기, 데이터 처리, 의사결정, 인지전 등 군사적 응용을 위한 것”이라며, 인간을 능가하는 범용인공지능(AGI) 개발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국은 국가적으로 ‘맨해튼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940년대 미국이 독일, 소련과 경쟁하면서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핵무기를 개발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21세기에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범용인공지능 개발이 핵무기 개발 경쟁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21세기 핵무기’인 인공지능 기술에서 앞서나가려는 미-중의 경쟁은 점점 더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모두 총력전 체제인데, 미국은 기업이, 중국은 국가가 주도권을 가진 것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지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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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창장로봇밸리 입구에 쓰여 있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 “로봇은 제조업 황관 꼭대기의 진주이며, 그 연구개발, 제조는 한 국가의 과학기술 창신과 첨단제조업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상하이/박민희 선임기자
상하이 창장로봇밸리 입구에 쓰여 있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 “로봇은 제조업 황관 꼭대기의 진주이며, 그 연구개발, 제조는 한 국가의 과학기술 창신과 첨단제조업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상하이/박민희 선임기자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드론과 인공지능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1세기 전쟁은 누가 더 강력한 성능의 인공지능을 이용해 로봇, 드론, 자율무기 체계, 정보통신을 운영하느냐로 판가름날 것이다. 20세기 지정학적 경쟁에서 핵무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21세기 전쟁과 지정학 경쟁에서 인공지능이 결정적 무기가 된다.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인류의 공멸을 막기 위해 인공지능의 군사적 이용을 제어할 ‘인공지능판 핵확산방지조약(NPT)’이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1968년 핵확산방지조약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될 때 이미 핵무기를 개발한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에만 핵보유국 기득권을 인정한 것처럼, ‘인공지능판 핵확산방지조약’이 체결된다면 그 시점까지 고성능 군사 인공지능 기술을 확보한 국가만 기득권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강대국과 거대 기술기업들이 경제, 군사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인공지능과 무한 경쟁을 벌이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남게 될까. 중국에서도 인공지능과 첨단제조업에 대한 무한 투자와는 대조적으로 서민들의 삶은 활기를 잃었다. 중국인들이 “미국의 제재와 압박을 뚫고 중국의 첨단기술이 굴기하고 있다”는 정부의 선전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애국심이 수많은 이들의 고단함을 계속 위로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일자리의 대부분을 대체하고 ‘쉬운 전쟁’의 도구가 된다면 어떤 사회가 오게 될까. 첨단기술 경쟁에서 이런 질문도, 평범한 개인들의 발언권도 낄 자리가 없다. 하지만, 이미 서민들의 삶의 질 하락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세계 곳곳에서 사회에 대한 보복심과 극우 정치로 분출하고 있다. 분노와 불안이 차오르는 세계에서 인공지능과 로봇, 자율무기는 인류를 어디로 끌고 가게 될까.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