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식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정치외교학부 교수)가 6일 오후 한겨레와 인터뷰한 뒤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노지원 기자
신범식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정치외교학부 교수)가 6일 오후 한겨레와 인터뷰한 뒤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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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문가인 신범식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정치외교학부 교수)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번 선거를 통해 “강대국 러시아 건설을 위한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를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보다 공고히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러 관계에 대해서는 “러시아를 적대화 할 경우 변화무쌍한 시기 한국 이익을 지키기 쉽지 않다”며 “유연성을 발휘해 관계 개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짚었다. 인터뷰는 지난 6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이루어졌다.

―이번 러시아 대선은 푸틴 대통령한테 어떤 의미인가?

“푸틴 (대통령) 집권 1·2기(2000·2004년)엔 탈냉전 뒤 서방과 공존을 도모했다면, 3·4기(2012·2018년) 때는 서방과의 타협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때부터 ‘강대국 러시아의 재건’이라는 목표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서방과의 협력, 대립을 동시에 고려하며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푸틴 대통령은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뒤 서방과의 직접적 대결 구도가 형성된 상황에서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공세적 전략을 유지하며 강대국으로 가는 노선을 계속해도 될지’를 묻고 있다. 정당성 확보 측면에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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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되면 2030년까지 30년 임기가 보장된다. 최장수 대통령이다. 왜 이렇게 오래 집권하려는 걸까?

“두 가지다. 러시아 정치문화에서 정권교체의 경험이 일천하며, 형성된 권력이 교체되기가 쉽지 않다. 또 하나는 푸틴의 개인적 특성이다. 그는 (1991년 12월 소련 붕괴 뒤) ‘잃어버린 10년’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고, 강대국을 부활시키겠다는 ‘사명감’이 지나치게 강하다. 푸틴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는 나토 가입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 있고, 2008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만들 때만 하더라도 합리적, 실용적 국제주의자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 이후 미국의 유라시아에 대한 팽창 정책이 강화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장이 본격화 되면서 2008년 조지아 전쟁, 2014년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의 발발로 위기감 속에서 러시아의 대외전략은 급속히 강경화됐다. 푸틴 3·4기에 이전과 달리 상당히 민족주의적, 보수적 노선을 채택한 이유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은 단합된 러시아가 서구의 적대를 넘어설 때만 가능하고 이를 위해 집중된 권력과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의 족쇄가 푸틴을 ‘권력의 기관차’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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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결과 대통령 지지율이 80%를 넘는다고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수치인가?

“러시아에서는 기본적으로 지도자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보이는 층이 형성돼 있다. (전체 유권자의) 약 3분의 1, 33% 정도다. 대체로 유지되는 이 지지율에 더해 나머지 3분의 2 가운데 절반을 합한 66∼67% 이상의 지지가 있어야 안정적 집권이 가능하고 60% 중반 아래면 불안하다고 인식된다. 푸틴 3기인 2012년 대선 때 푸틴 득표율은 64.35%인데, 어렵게 선거를 치르고 승리 뒤 감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2018년 선거 때는 관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보였다. 실제 득표율은 77.53%가 나왔다. 러시아 정치의 특성 속에서 읽으면 지지율 조사에 대한 의미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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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에서 득표율이 더 높아질까?

“2018년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2년 넘게 끌고가면서 시민 여론이 악화할 법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나보다.

“푸틴 3·4기를 지나면서 유권자가 보수화하고 강대국을 지향하는 푸틴의 지도력에 지지를 보내는 경향이 강화됐다. 특히 대통령 정치에 대한 비판이 (러시아가 ‘특수군사작전’이라고 부르는) 전쟁과 함께 사라졌다. 언론 통제도 있지만 애국주의가 고조되는 가운데 똘똘 뭉쳐야 한다는 심리를 기반으로 한 ‘전쟁 프리미엄’이 작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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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현재 러시아 정치의 패턴을 ‘스트롱맨’에 의한 독재, 전횡으로 해석하며 악마화하면 그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전쟁 출구 모색을 비롯한 러시아와의 관계 관리 가능성이 사라진다. 의외로 그는 ‘노심초사’ 방어형에 가깝다. 다양한 그룹의 이익을 조율하면서 정권 안정성 유지를 위해 무척 고민한다. 민간 용병 바그너 그룹의 신망이 높아도 군부를 무시할 수 없어 이들을 국방부로 흡수시키려는 일종의 차선책을 택하거나, ‘부분 동원령’을 내려 경제적 타격과 동요 등 마이너스 요소를 줄이려는 행태가 대표적 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향후 미-러 관계는 어떻게 될까?

“푸틴은 최근 인터뷰에서 트럼프, 조 바이든 대통령 중 ‘예측 가능성’을 이유로 ‘바이든을 더 선호한다’라고 말했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대러시아 정책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을 거다. 트럼프 당선 뒤 우크라이나전이 끝난다 하더라도 미국이 러시아와 협력할지 묻는다면 ‘아니다’이다. 상당 시간 동안 미-러의 협력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북-러가 각각 무기와 식량을 주고 받은 걸로 보인다. 향후 밀착 가능성은?

“선거 뒤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겠지만 최우선 순위는 아니다. 가장 큰 관심사는 첫째, 우크라이나 전쟁, 둘째 브릭스 등 글로벌 사우스와 러시아·중국·인도 삼각협력 관계 확장이다. 그 다음에 중동, 동북아시아가 따라온다. 러시아가 북한 포탄을 수입한 것은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여력 확보 성격이 짙다. 그 대가로 북한 식량 지원 등 협력을 통해 과거 선을 그었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향후 한반도 질서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중요 채널 유지 차원에서 읽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긴장 상황에서 러시아가 글로벌 행위자로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갈등 속에서 독자적 영향력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로 러시아에 북한의 가치는 높다. 이를 방관만 해선 안 된다.”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보고 있다. 향후 한-러 관계는 어떻게 될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에 대해서는 강하게 경고하지만 한국과도 좋은 관계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낸다. 한국이 친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와의 연대 전략을 공식화했지만 글로벌 사우스 그룹, 중·러·인도라는 유라시아 축과 담쌓고 지낼 순 없다. 러시아를 적대화 할 경우 변화무쌍한 시기 한국 이익을 지키기 쉽지 않다. 유연성은 ‘지정학적 중간국’에는 매우 중요한 외교의 조건이다. 선명성 전략으로 이익을 취하더라도 동시에 유연성을 발휘해 이들 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준비해야 한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