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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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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최근 미국 정치권을 뒤흔든 “심각한 국가 안보 위협”은 러시아가 개발 중인 인공위성을 공격하기 위한 핵 전자기파(EMP) 무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시엔엔(CNN)은 17일 이 사안에 대해 잘 아는 미국 정보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가 대량 에너지파를 만들어 위성을 공격하는 핵 우주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 무기가 사용되면 “(현재 사용 중인) 핸드폰 통화, 결제, 인터넷 검색을 위해 사용되는 상업·공공용 위성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전했다. 전자기 에너지 파동과 전기 입자를 쏴 지구 궤도 위의 위성을 못 쓰게 만드는 무기를 핵 전자기파 무기라 부른다. (2024. 02.18 한겨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러시아의 우주 핵무기 개발설을 부인하며 우주 핵무기 배치에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이 우방국들에 러시아가 이르면 올해 중 우주에 핵무기를 배치할 것이라고 알렸다는 보도가 다시 나오는 등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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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은 이날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만나 “우리의 입장은 분명하고 투명하다. 우리는 우주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걸 단호하게 반대해왔고 지금도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 분야의 모든 합의를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며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이와 관련한 합동 작업 강화를 제안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러시아의 우주 활동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하는 것과 똑같다며 “그들도 이를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2월21일 한겨레)

Q. 와, 요즘 왜 이렇게 세상이 무시무시하냐. 현실이 SF 영화 같아. EMP 무기가 뭐야?

A. EMP(Electromagnetic Pulse)는 전자기장에 의해 매우 짧은 시간에 발생하는 진동, 전자기 펄스를 말해. 자연적(태양 흑점 폭발 등)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인공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어. 통신을 방해하거나 전자제품에 손상을 줄 수 있지.

이런 원리를 이용해 고(高)에너지 EMP 무기를 개발하면 국가 전체 통신망을 와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지. 핵을 이용하면 그런 고에너지가 가능할 거라고 본 거고. 그래서 EMP 무기라고 하면 보통 ‘핵 EMP(Nuclear electromagnetic pulse·NEMP) 무기’를 뜻해. 지구 표면에서 수백~수천 킬로 상공에서 폭발시키는 핵무기라는 뜻에서 ‘고위도 전자기펄스’(HEMP) 무기라고도 불려.

EMP 무기는 SF에서 흔히 나오는 소재야. ‘매트릭스’에서 인간들은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로봇군단에 맞서 EMP 무기를 사용해. 핵 EMP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도 나오지. 인조인간인 ‘리플리컨츠’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핵폭발로 강력한 EMP가 발생해서 전기 및 통신 인프라가 파괴되고, 혼란과 암흑으로 뒤덮인 대정전이 벌어진다는 설정이야.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속 유령도시. 핵폭발로 EMP가 대량 발생하며 모든 일상이 멈췄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속 유령도시. 핵폭발로 EMP가 대량 발생하며 모든 일상이 멈췄다. 넷플릭스 제공

Q. 듣고 보니 EMP 무기가 난데없이 뚝 떨어진 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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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핵폭발 때 전자기 펄스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핵실험 초창기부터 인지됐어. 미국은 1958년 4~8월 태평양에서 무려 35차례 핵실험을 했어. ‘하드택’이라는 암호명의 프로젝트였는데, 헬륨 가스를 넣은 기구에 핵폭탄을 넣어 높은 고도에서 폭발시키면서 이때 나타나는 EMP를 관측했어. 높은 고도에서 핵폭발하면 전자기 펄스가 훨씬 많이 방출된다는 것을 확인했지.

미국은 1962년 7월엔 ‘스타피시 프라임’이라고 명명된 핵실험을 해. 태평양의 약 400㎞ 상공에서 핵을 터뜨렸는데 그 효과가 이전보다 훨씬 컸어. 1445㎞나 떨어진 하와이에서도 전자기 피해가 발생해서 약 300개의 가로등과 경보등이 오작동했어. EMP 무기의 잠재성을 입증한 거지.

미국이 이렇게 나오니 소련이 가만있었겠어? 소련도 1962년 카자흐스탄 우주 상공에서 ‘소비에트 프로젝트 케이(K) 핵 실험’이라고 불린, EMP 발생 핵실험을 3차례 했어. 폭발 규모는 미국의 스타피시 프라임 실험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인구 밀집 지역의 상공이었고 지구 자기장이 강한 북극에 가까운 곳이라 스타피시 프라임 때보다 효과가 더 막강했다고 하더라고. 지하 송전선에서 전류가 급증해 발전소 화재가 일어났어.

Q. 아하, 핵 EMP는 이미 미-소 냉전의 중요한 축이었구나.

A. 응, 핵 EMP 무기는 결국 지구의 대기권 밖, 즉 우주에서 사용되는 무기잖아. 이런 ‘우주 무기’ 개발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미국 행정부 때 절정에 올랐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지칭하고, 그 붕괴를 위해 군확(군비확대)노선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레이건은 1983년 적의 핵공격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전략방위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SDI)을 발표했어. 적이 발사한 핵미사일을 대기권 밖에서 요격하겠다는 개념인데, 우주에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한다는거지. 당시 큰 인기를 끌던 영화 제목인 ‘스타 워즈’ 프로젝트로 불리며, 큰 관심과 동시에 우려를 불러일으켰어.

‘스타 워즈’ 계획에 따라 미국은 레이저, 빔 병기(가속된 이온·플라즈마 등 입자를 사용하는 것), 다양한 센서, 지상 및 우주 배치 미사일 시스템, 수백개의 위성을 지휘통제하는 고성능 컴퓨터 시스템 등의 개념을 고안하고 연구했지. 여기엔 적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위성 파괴 개념도 당연히 있었지.

Q. EMP 무기는 미국이 원조네?

A. 그렇지. 하지만 당시 기술 수준으로 전략방위구상이 현실성 있냐는 논란은 처음부터 제기됐어. 영화 ‘스타 워즈’에나 나오는 공상 아니냐, 그런 비판이 있었지만 레이건이 워낙 진지하게 프로젝트를 추진했기 때문에 대중이나 전문가들은 곧 그런 무기가 나오겠구나, 했지. 하지만 전략방위구상이 몇 년 안에 현실화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했고, 실제로 진전도 없었어.

1991년 7월 31일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간의 서명을 시작으로 전략무기감축협상이 시작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1년 7월 31일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간의 서명을 시작으로 전략무기감축협상이 시작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Q. 전략방위구상이 헛짓이라는 건 언제 알려졌는데?

A. 1985년 소련에서 신임 공산당 서기장이 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 정책을 내세우며 미국과의 화해를 제안하면서 갑자기 해빙 무드로 급전환했어. 미-소는 1987년 중거리핵미사일 배치를 폐기하는 중거리핵전력협정(INF)을 맺는 결실을 거뒀지. 중거리 미사일은 값도 싼 데다 정확도가 높아서, 미-소 양국은 상대방에 인접한 동맹국들에 배치했었거든. 이 조약 체결이 평화로 가는 큰 발걸음으로 받아들여진 이유야.

그런데 군축협정이 맺어진 1987년 미국 물리학회는 전략방위구상에서 검토한 기술을 실제 사용하려면 몇십년이 필요할뿐더러, 그런 시스템 자체가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연구 자체도 최소 10년이 걸린다는 보고서를 내놨어. 전략방위구상이 미국의 ‘뻥’이라는 게 드러난 거지.

흥미로운 건 소련이 갑자기 화해 제안을 내놓기까지 미국의 전략방위구상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야. 미국이 자기들의 핵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여 빨리 선제적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던 거야.

Q. 그럼 실제로 미-소 군축은 얼마나 진전이 됐어?

A. 소련 붕괴를 몇달 앞둔 1991년 미-소는 드디어 전략무기감축조약(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START)를 타결했어. 지난해 푸틴이 우크라를 압박하기 위해 벨라루스에 핵전술무기를 처음으로 재배치했다는 뉴스 혹시 기억나? START에 따라 벨라루스·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 등 전 소련연방국가들이 핵무기를 러시아에 돌려줬던 거거든. 1993년엔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Ⅱ이 타결되고, 1997년엔 탄도미사일금지조약(ABM)이 맺어졌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포로 돌아갔어.

미-러 양국 의회가 이 조약을 비준해야 하는데, 서로 네가 먼저 하면 우리도 하겠다, 책임을 미뤘어. 1997년엔 25년 전에 맺은 탄도미사일조약(ABM) 개정안에 합의했다가 2001년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이 탈퇴했고, 동유럽 등 러시아 주변국에 미사일방어망(MD) 구축까지 밝혔어.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와서 러시아하고 대화를 재개하면서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을 맺었는데, 이때도 미국은 미사일방어망 포기는 약속하지 않았어.

그러다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으로 군축협상은 완전히 후퇴했고. 2022년 우크라전쟁이 터지면서 거의 물건너간 셈이 돼버렸어. 최근 우주무기를 둘러싼 공방은 군축협상을 둘러싼 미-러 양국의 오랜 불신의 연장선에 놓여 있어.

Q. 그런데 핵 EMP는 어차피 군축협상과는 별개 아니야? 이건 우주 무기잖아.

A. 아, 우주 역시 군사적 사용이 제한돼 있어. 1967년 미국·소련·영국 등 주요국들이 참가하는 우주조약(Outer Space Treaty)이 맺어졌거든. 우주 공간에서 대량살상무기 배치 및 군사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야. 물론 강제성과 구체성은 떨어지는 측면이 있지. 레이건의 전략방위구상 추진도 사실 우주조약에 저촉되는 거니까.

러시아의 핵무기 개발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핵무기 개발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Q. 그런데 왜 갑자기 미국은 러시아의 핵 EMP 개발을 경고한 거지?

A. 이번 논란은 미 하원 정보위원장인 마이크 터너(공화당)가 정부로부터 받은 보고를 일부 누설하면서 불거진 거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바이든 대통령 지시로 상·하원의 양당 지도부와 정보위 핵심 인사들에게 국가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정보를 브리핑해줬다면서 “사실 국가안보보좌관이 그렇게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어. 이어 미 언론들이 잇따라 관련 보도를 내놓으면서 러시아의 무기 개발 논란이 증폭됐어.

2023년 8월1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기지에서 달 탐사선 루나-25호를 실은 소유즈 로켓이 날아오르고 있다. 보스토치니/타스 연합뉴스
2023년 8월1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기지에서 달 탐사선 루나-25호를 실은 소유즈 로켓이 날아오르고 있다. 보스토치니/타스 연합뉴스

Q. 핵심적 질문이야. 러시아는 진짜 핵 EMP 무기를 개발했을까?

A.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미-러 양국이 우주에 그런 무기를 배치할 잠재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야. 문제는 왜 이렇게 파문이 커졌느냐지. 미 행정부가 의회에 일상적인 안보 브리핑을 했는데, 우주 무기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터너 정보위원장이 과잉반응한 것인지, 아니면 미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린 것인지, 혹은 정말로 러시아의 우주 무기 개발이 심각하게 진전됐는지는 여전히 모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2일 핵전략폭격기 Tu-160M에 탑승하려 하고 있다. 카잔/로이터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2일 핵전략폭격기 Tu-160M에 탑승하려 하고 있다. 카잔/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에 실제 핵 EMP 무기가 있는지는 푸틴 말고는 모를 거야. 다만 최근 러시아가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데 대한 미국의 견제가 작용한 건 사실이야.

러시아는 최근 몇 년새 △핵추진 순항 미사일 △마하 20 이상의 RS-26 ‘아방가르드’ ‘킨잘’ 등 초음속 미사일 △요격 불가능한 극초음속 다탄두 RS-28 ‘사르맛’ 대륙간탄도미사일 △핵탄두 탑재 대륙간 수중 드론 ‘슈퍼 무기’들을 공개해왔어. 이런 신형무기들이 막강한 성능을 갖췄다면 사실상 미국은 방어가 불가능해. 레이건 때 미국이 그랬든, 푸틴도 뻥 치는 것일 수 있지만 미국에 위협이 되는 건 사실이야.

사실 파파고도 정말 걱정이야. 우주무기를 비롯해 무분별한 무기 개발이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하는데 상황은 악화일로니까. 평화를 기원하면서 새봄을 기다려보자.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