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미 영국대사 피터 맨델슨이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틴과 친분 문제로 해임됐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노동당을 이끌며 ‘어둠의 왕자’로 불리던 유력 인사였다.
로이터통신 보도를 보면, 영국 외무부는 11일(현지시각) “피터 맨델슨이 작성한 이메일에서 추가적인 정보가 발견됨에 따라, 총리가 그를 대사직에서 해임하라고 외무장관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외무부가 언급한 추가 정보는 맨델슨 대사가 엡스틴의 첫 번째 유죄 판결이 잘못된 것이라며 이를 다투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을 말한다. 언론에 추가 공개된 이메일에는 맨델슨이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기소된 엡스틴에게 조기 석방을 위해서 싸우라고 조언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외무부는 “이 이메일들은 피터 맨델슨과 엡스틴의 관계가 임명 당시 알려진 것과는 실질적으로 다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앞서 엡스틴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만들어진 ‘생일 축하책’에 맨델슨이 엡스틴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로 표현한 편지가 실려 있음이 최근 밝혀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 생일축하책은 지난 8일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공개한 것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앱스틴에게 보낸 외설적인 내용의 엽서가 들어 있었다.
이후 맨델슨은 엡스틴을 만난 것을 깊이 후회하며 “그와의 관계를 그만두었어야 할 시기보다 훨씬 더 오래 유지했다”고 반성한 바 있다. 이에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노동당)는 맨델슨을 지지한다고 의회에서 밝혔지만, 추가로 드러난 이메일로 결국 해임을 결정했다.
71살인 맨델슨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함께 ‘신노동당’을 설계한 공동 창시자다. 그와 블레어 전 총리가 이끌던 1990년대 노동당은 선거에서 연전연승을 거듭했다. 그는 노동당 정부의 막후 조율을 맡은 ‘어둠의 왕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98년 통상산업부 장관, 1999년 북아일랜드 장관이 되었으나, 두차례 모두 개인 비리 문제로 물러났다. 2001년 총선에서 재선된 그는 2004년엔 의원직을 내려놓고 유럽연합 통상 집행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8년 고든 브라운 내각의 장관으로 복귀하면서 동시에 귀족 작위를 받고, 상원의원이 됐다. 지난해 12월 스타머 총리에 의해 주미 영국대사로 임명됐다.
2019년 제이피(JP)모건 은행의 내부 보고서엔 “엡스틴이 앤드루 왕자, 그리고 피터 맨델슨 경과 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앱스틴이 맨델슨 대사를 “피티”라는 애칭으로 불렀단 내용도 담겨 있다. 이 보고서엔 앱스틴이 자신의 뉴욕 아파트에 맨델슨이 머무를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당시 앱스틴은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복역 중이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