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이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절차에 들어간 가운데 3000억달러(약 453조원) 규모로 알려진 이란 재건기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걸프국과 한국·일본 등 동맹·우방국 기업들의 투자로 조성되는 구상으로 알려진 이 기금을 두고, 전쟁은 미국이 주도해놓고 전후 복구와 역내 안정에 필요한 비용은 다른 나라에 전가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정부 예산이 투입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돈의 출처가 어디든 간에 이란에 천문학적인 경제적 보상을 허용하는 것은 문제라는 미국 내 반발도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6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이 기금 전체의 절반이 넘는 자금이 이미 출자 약정된 상태라며 한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국 기업 등을 거론했다. 다만 구체적인 기업명과 약정 규모, 실제 법적 구속력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기금은 ‘재건개발 기금’으로 불릴 예정이며, 투자 분야는 에너지, 물류, 제조, 운송 등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로 글로벌 자본시장 접근이 크게 제한됐다. 최종 합의가 성사되고 제재 완화가 실제로 이행될 경우, 이란은 40여년 만에 대규모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란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커다란 ‘당근’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기금의 출발점은 이란의 전쟁 피해 배상 요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이란이 당초 전쟁 피해 보상금 명목으로 미국에 4000억달러를 요구했으나 미국이 이를 거부했고, 이후 3000억달러 규모의 재건개발기금 구상이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액시오스는 이와 관련해 카타르가 민간 및 동맹국 투자를 활용한 ‘번영기금’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고, 이후 수 주 동안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논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이란이 이 기금을 사실상의 전쟁 피해 보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이 커지자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이날 메긴 켈리 쇼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란에 직접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예를 들어 아랍에미리트(UAE)가 이란의 원전 건설에 투자하려 해도 미국이 제재를 풀어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이란이 핵무기를 영구 포기하고 고농축 우라늄 폐기 등 행동을 바꿀 경우에만 다른 나라들이 이란 재건에 투자할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춰주겠다는 철저한 ‘조건부 이행’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이란에 대규모 자본 유입의 길을 열어주는 방식이라는 점 때문에 미국 내 공화당 강경파 사이에서 비판이 나온다. 부시 행정부 백악관 연설문 작성자 출신의 보수 논객 마크 티센은 “유출된 대로 거래 조건이 사실이라면 완전한 재앙”이라고 비난했다. 시엔엔(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5~2020년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JCPOA)를 비판하면서 이란이 1500억달러를 받는다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제기했다며 이번에 논의되는 재건기금 규모(3000억달러)는 당시 그가 비판했던 액수의 정확히 두 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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