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특한 주홍빛을 띠는 당근은 친숙한 채소 중 하나다. 저장성이 뛰어나 사시사철 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천연의 단맛이 각종 요리에 잘 어울린다. 친숙한 만큼 호불호도 크게 갈린다. 오이와 함께 채소 편식의 대명사처럼 불리기도 하는 반면, 누군가는 당근을 너무 좋아해 소소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몇 해 전 해외 토픽으로 소개돼 화제가 됐던 20대 스코틀랜드 여성 데나 랜들처럼 말이다.
그는 식단 조절을 위해 먹기 시작한 당근이 너무 좋아져 10년간 매일 당근 6개씩 먹은 뒤 얼굴과 몸까지 홍당무 색으로 변해 유명해졌다. 의학적인 진단명은 ‘카로틴 피부증(축적증, 혈증)’이다. 많을 때는 하루 10개씩, 일주일에 6㎏ 이상을 섭취했다. 친구들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움파룸파’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소셜미디어(SNS)에 알려진 뒤 인플루언서가 됐다.
하루 당근 1개가 적당…5~6개 이상은 ‘자제해야’
이후 뷰티 인플루언서 사이에선 이러한 피부색이 태닝한 것과 비슷하다고 소문나면서 하루에 당근 3개를 섭취하는 ‘당근 태닝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 당근이 몸에 좋은 채소라 해도 이렇게 과다 섭취하면 과연 건강에 문제가 없을까?
권오란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당근에 풍부한 항산화 기능 성분이자 식물성 비타민A인 ‘베타카로틴’ 때문”이라며 “당근을 ‘그만 먹으라’는 몸의 신호일 순 있지만, 손바닥이 노래질 정도로 먹어도 몸에 별문제는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어 “베타카로틴이나 콩의 이소플라본 등은 과다 섭취 시 ‘채소 독성’을 보일 순 있지만, 식품으로만 섭취했을 땐 문제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생채소 등 원물이나 식품 형태로는 그만큼 많은 양을 섭취할 수 없는데다, 다른 영양성분도 함께 섭취하며 그 효과를 일부 상쇄하기 때문이다.
200g 짜리 당근 먹으면 하루 비타민A 필요량 충족
반면, 기능성을 위해 특정 성분만을 추출해 고농축한 식품보조제 형태일 때는 과다 섭취와 독성에 주의해야 한다. 의학적으로도 카로틴 피부증은 피부색이 변하는 것 외에는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은 주지 않는다. 피부색 변화 역시 일시적이지만, 원래 피부색으로 돌아올 때까진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실제 당근에는 4천~5천㎍(4~5㎎)에 달하는 다량의 베타카로틴 성분이 들어 있다. 경우에 따라선 하루 권장량을 충족하고도 남는 정도의 양이다. 문제는 연구나 기관에 따라 베타카로틴의 하루 권장량이 제각각이라 정확한 적정 섭취량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적게는 하루 2~6㎎을, 많게는 ‘어린이 150㎎ 내외, 성인 300㎎ 이상’을 섭취하도록 권장하기도 한다.
이는 베타카로틴이 우리 몸에서 그대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대사과정을 거쳐 비타민A로 전환해 기능하는 물질(비타민A 전구체)이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베타카로틴은 우리 몸에서 비타민A의 기능을 많이 기대하고 섭취하지만, 실제로 전환율은 그리 높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어 “학계에서도 베타카로틴의 비타민A 전환율을 계산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데, 최근에 많이 바뀐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과다 섭취 땐 얼굴 붉어지고 간 나빠져
이는 권 교수를 비롯해 한국영양학회 연구진이 참여한 국가보고서인 ‘2020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 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학회는 5년 주기로 보고서를 개정하면서 기존의 비타민A 권장 섭취량을 전면 재검토하고 연령·성별 평균 필요량과 상한 섭취량을 중심으로 다시 설정했다.
이에 따르면, 베타카로틴의 비타민A 활성 전환율(RAE)은 정제기름 형태로도 절반에 그친다. 식품으로 섭취할 때는 여기서도 6분의 1 수준이라, 실제 비율은 베타카로틴 함량의 12분의 1에 불과하다. 다만, 베타카로틴의 전환율은 다른 카로티노이드와 비교했을 땐 2배 높아 우수한 정도다. 이를 적용해 당근 내 베타카로틴을 비타민A로 전환한 함유량은 100g당 460μg(1회 제공분 200g당 920μg) 수준이다.

적절한 하루 당근 섭취량을 구하기 위해선 이에 더해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비타민A의 양(평균 필요량)도 구해야 한다. 이 역시 약간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데, 연령과 체중, 식사 과정에서 손실하는 비타민A 정도와 간의 비타민A 저장량과 저장 효율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결과, 보고서는 한국인의 연령별 비타민A 평균 필요량은 하루 190~560μg, 권장 섭취량은 250~800μg, 상한 섭취량은 600~3000μg으로 권고했다. 따라서 하루 당근 1개(200g, 1회 제공량)를 섭취한다면 모든 연령대와 성별에서 하루 비타민A 필요량과 권고량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
다만 당근이 아무리 입맛에 맞고 좋더라도 하루 5~6개 이상은 먹지 않는 게 좋겠다. 베타카로틴과 비타민A 섭취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과다 섭취 땐 주로 간 기능 손상이 우려되며 골밀도 감소와 기형아 출산 등도 보고된다. 특히 흡연자의 폐암 유발을 촉진하거나 햇볕을 많이 쬐는 중년 여성의 피부 손상 등의 사례도 있어 이에 해당한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권 교수는 “개정된 권고안에선 한국인의 비타민A 섭취량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베타카로틴의 전환율 계산법 등이 바뀐 영향이 있기에 실제 어느 정도일지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지현 객원기자, 사진 청과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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