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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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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실버타운을 지으려면 토지와 건물을 모두 소유해야 한다는 규제를 없애기로 했다. 고령화 속도가 가팔라지는 추세에 토지·건물 사용권만 있어도 설립 권한을 줘, 민간 공급 실버타운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다. 다만 실버타운 공급을 민간에 맡긴 뒤 서비스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10년 전 분양을 중단했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촘촘한 추가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3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민간 실버타운 공급을 확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정부는 앞서 3월 민생토론회에서 밝힌 분양형 실버타운을 내년 중 인구 감소 지역(89곳)에 도입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투기 수요가 낮은 인구감소 지역에 시범 운영을 해본 뒤 수도권 확대를 논의한다는 계획으로 실버타운이 투기 자산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다는 취지다.

민간이 시장성을 보고 실버타운 건설에 나서야 하는 게 관건인 만큼 정부는 관련 규제를 풀어 뒷받침하기로 했다. 현행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상 실버타운을 건설하려면 ‘토지·건물 소유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을 ‘토지 및 건물의 소유권 또는 사용권을 확보’하면 된다로 고칠 예정이다. 사업자의 초기 자본 부담이 커 공급 확대에 제약이 컸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토지·건물 사용권을 기반으로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전문 사업자 육성을 위한 지원근거 및 사업자 요건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중산층을 위한 노인형 장기임대주택 개념의 ‘실버스테이’도 법 개정을 통해 도입이 추진된다. 실버스테이는 동작 감지기와 단차 제거 등 고령층 특화 시설이 갖춰진 주택으로 의료, 요양 등 노인 돌봄 서비스가 제공된다. 정부는 기존 노인 주거 모델이 고가의 실버타운과 저소득층을 위한 고령자 복지주택으로 양분된 데다, 그마저도 물량이 충분치 않아 중산층 노인들이 거주할 만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실버스테이를 도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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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공공택지 내 민간임대용지 일부를 의료·복지시설 등 인접 지역에 배치해, 실버스테이를 공급하는 민간 건설사에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건설 자금 등에 대해 주택도시기금이 출자(리츠) 또는 융자도 지원한다. 정부가 유휴 국공유지 등을 발굴해 제공한 부지를 사업자가 이용하면, 노년층 이용자에게 부과되는 임대료는 시세 95% 이하로 낮추는 규제도 적용될 전망이다. 정부는 하반기 중 지역을 선정해 실버스테이 시범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부축 등 돌봄 지원을 받아야 하는 장기요양 3~5등급 고령층 대상으로 특화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보조 주거형 실버타운 설립도 허용한다. 이를 위해 실버타운 입소기준도 ‘독립생활이 가능한 60살 이상’에서 ‘60살 이상’으로 완화할 계획이다. 실버타운 거주자 요건이 기본적으로 독립 생활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간 시설마다 돌봄 서비스 지원 정도에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고령 입소자가 자연스런 노화로 입소 뒤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경우, 퇴소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밖에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고령자 복지주택은 현행 건설임대 1천호에다 노후 임대주택의 리모델링 및 매입임대를 통해 2천호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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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안팎에선 실버타운 분양을 두고 과거 불거진 불법 전매 등 투기 논란과 부실 운영 논란을 차단하는 데 정책 성패가 걸려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실버타운을 분양한 뒤 가사·돌봄 서비스 등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먹튀’ 논란이 일거나, 분양 뒤 전매하는 등 사실상 고급 주택으로 전용되고 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2015년 실버타운 분양 사업을 중단한 바 있다. 정부는 부실한 서비스 운영을 막기 위해 표준계약서 및 분쟁조정제도를 마련하고, 개별 실버타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통합 누리집도 개설할 계획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민간에서 공급하는 만큼 규모를 미리 정할 수 없다”면서도 “65살 이상 인구 대비 시니어 레지던스 비중을 일본 수준인 3%까지 높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고령 인구 대비 실버타운 등 시니어 레지던스 비중은 0.12%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