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남산 밝은 달 아래, 밤드리 노니다가 돌아와 보니 다리가 네허이어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에인고~”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 멀티스튜디오. 들리는 음악은 분명 이탈리아 오페라 ‘팔리아치’인데, 아리아엔 신라 향가 처용가가 등장한다. 오는 19~21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오페라 ‘광대들’ 연습 현장이다.
이는 한국적 오페라를 모색해온 장수동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의 작품이다. 벤저민 브리튼의 오페라 ‘컬류 리버’를 제주 4·3 당시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어머니 얘기 ‘섬진강 나루’로,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의 바로크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서울*오르페오’로 번안한 그가 이번엔 루제로 레온카발로가 1892년 초연한 ‘팔리아치’를 청계천으로 옮겨왔다. 광대를 뜻하는 ‘팔리아치’는 영웅이나 왕이 아닌 평범한 인간의 사랑과 질투, 폭력을 현실적으로 그려 이탈리아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원작은 이탈리아 남쪽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것인데, 청계천을 무대로 우리 오페라를 얘기하고 싶었어요. 청계천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북으로 못 간 사람들의 임시 거주지였고, 복개와 고가 설치, 고가 철거, 현재 ‘종묘 앞 재개발 논쟁’까지 서울의 재개발, 도시화 과정, 서울의 변화를 얘기하는 상징적 장소예요.”
134년 전 이탈리아 유랑극단의 비극을 청계천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현대판 떠돌이의 삶으로 변주한 것이다. 원작 속 극단장 카니오는 태석, 그의 아내 넷다는 애란, 넷다의 연인 실비오는 재준, 자신의 애정 공세를 거절한 넷다에 대한 복수심으로 갈등을 부추기는 토니오는 용만으로 바뀐다. 장수동 연출은 “용만은 욕망을 의인화한 이름”이라고 했다.

장 연출은 2003년 초연했던 것을 23년 만에 다시 가져왔다. “초연 당시 서양 오페라를 한국화한다고 했지만, 적당히 절충해 좀 애매했어요. 결국 두세번 공연하다 덮었어요. 이번엔 전부 뜯어 발겼습니다. 원작에서 유랑극단이 펼치는 가면극을 천년 전 우리 선조가 쓴, 불륜을 다룬 신라 향가 처용가로 변주한 게 대표적이죠.” 원작에서 유랑극단이 극 중 극으로 펼치는 가면극 ‘코메디아 델리르테’를 처용 설화를 입힌 가면극 ‘신라의 달밤’으로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원작의 음악은 하나도 손 안 대고 그대로 가져왔어요. 음악은 바꿀 수 없는 거죠.” 곡 자체는 그대로 두고 이야기 배경과 아리아만 완전히 바꾼 것에 대해 그는 한국적 오페라의 새 장을 열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우리 대중음악, 영화는 이제 전세계 사람들이 다 봅니다. 서양 원작 오페라도 로마, 런던 무대에서 우리말로 우리식 아리아를 부를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봐요.” 그는 “김민기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원작은 독일 작품이지만 민기 형이 잘 만들어 우리 것으로 바꿨듯, 단순 번안이 아니라 우리 얼굴을 한 오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작품엔 ‘처용가’ 말고도 한국적 요소를 곳곳에 담아냈다. 불빛이 반짝이는 청계천이 주요 무대 장치로 등장하고, “다이소, 천원!”이라고 극 중 소품 공급처를 밝히기도 한다. 청계천의 흥망성쇠를 드러내기 위해 영상도 적극 활용한다. 아내 애란의 부정을 의심하던 태석이 극 중 극 ‘신라의 달밤’ 공연 도중 아내를 해치는 대목에선 청계고가가 무너지는 장면 등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막간엔 실제 곡예단이 저글링, 공중곡예 등 서커스도 펼친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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