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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 캐릭터가 없는 드라마를 상상할 수 있을까. 속 다르고 겉 다르며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속물’적 인물들이 없다면 갈등은 누가 만들고, 자칫 싱거워질 수 있는 얘기에 양념은 누가 칠 것인가. 드라마의 ‘양념’이자 ‘갈등제조기’로 속물 아줌마 캐릭터들이 브라운관을 휘젓고 있다. 지상파 일일드라마와 주말·금요드라마를 넘나들며 소리없이 사랑받고 있지만, 이들 속물 아줌마의 범람에 아줌마를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 깔려 있다는 혐의를 거두긴 어렵다.

넘쳐나는 ‘속물’ 아줌마들=순정한 청춘남녀 국화(구혜선)와 윤후(서지석)의 조건 없는 사랑을 가로막고 나선 윤여정(극중 윤명혜·윤후 모·왼쪽아래)씨. 유명짜한 강남 요리학원 원장이자 티브이에서 고부갈등 완전정복 따위를 주제로 강연할 만큼 젠체하지만 속내는 완전 속물이다. 그에게 인간을 재는 척도는 돈이다. 돈 없는 집안 출신이면 무조건 아래로 보고 무시한다. 생신 축하를 위해 찾아간 연변처녀 국화에게 와인 잔 쥐는 법을 모른다고 ‘배운 데 없다’고 몰아치는 건 예삿일이다. 윤여정은 어떤 배역에서든 캐릭터보다는 배우 자신이 도드라지는 편이지만, 〈열아홉 순정〉(한국방송 일일드라마)의 얄미운 속물 연기는 시청자들의 사랑을 그러모을 만큼 무르익었다.

한국방송 주말극 〈소문난 칠공주〉의 반찬가게 사장 반찬순(윤미라·왼쪽위)씨. 행동거지는 도도하고 부잣집 마나님처럼 보이려 애쓰지만, 속내에는 ‘못 배운 아픔’을 삭혔다. 법대생 남편을 여의고 법대생 아들을 홀로 키워낸 ‘억척 엄마’다. 같은 아파트의 노총각 공수표(노주현)를 ‘빵씨 아저씨’로 들입다 무시했으나 명문대 출신임을 알자마자 곧장 ‘공 선생님’으로 호칭을 바꾸는 위인이다. 에스비에스 금요드라마 〈마이 러브〉에서 일등 신랑감 아들을 뒀다고 기고만장한 박정수(이창훈 어머니 역·오른쪽위)씨. 그 역시 고상한 척, 돈 밝히는 캐릭터로, 속물 아줌마 대열에서 빠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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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과 윤미라, 박정수가 얄밉거나 귀여운 코믹형 속물이라면, 문화방송 주말극 〈누나〉의 송옥숙(수아 어머니·오른쪽아래)은 강자에겐 납작 엎드리고 약자에겐 군림하는 악역 속물이다. 자기 식구를 돌봐줬던 은인이 죽자 주인공 송윤아(승주) 남매의 유산까지 가로챘다.

속물 ‘아저씨’들 어디 갔나=이쯤 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 하나. 인구비례로 따져도 쌔고 쌨을 ‘아저씨’ 속물들은 다 어디로 숨었을까. 〈열아홉 순정〉의 윤여정 남편 한진희(박동국)는 자녀 결혼관에선 아내에 지지 않을 만큼 구태적이다. 하지만 ‘분수 모르고 일등 신랑감 아들과 사랑하겠다는 연변처녀’를 직접 ‘진압’하는 행동대로 아내를 내세운다. 자신은 모른 척, 속물이 아닌 척 아내 뒤로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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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칠공주〉에선 군대식 문화를 집안에 강요했던 갈등제조기 박인환(나양팔)마저 최근엔 사위 문제로 불거진 갈등을 해결하는 합리적 중재자로 나섰다. 개중 가장 합리적인 캐릭터였던 네 자매의 어머니 김해숙마저도 사위 문제로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쪽은 아줌마이고 해결하는 쪽은 아저씨들이란 ‘낡은 등식’이 여전히 많은 드라마에서 작동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부장 김언경씨의 말대로 현실의 속물들은 남자, 여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지만, 드라마 속 남자들은 무능할지언정 속물이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 일각의 아줌마를 바라보는 가부장적 고정관념이 드라마들에선 더욱 부각되는 방식으로 매번 비슷하게 재생되고 있는 셈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