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오전 10시,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에 동남아시아 학생들이 나타났다.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콸라룸푸르, 방콕, 타이베이 등 아시아 각국 건축, 도시, 조경 관련학과 교수와 학생 60여명이다. 서울시립대에서 여는 아시아건축도시연합(ACAU) 워크숍에 참가해 ‘아파트 이후’를 주제로 해법을 모색하면서 백사마을 견학에 나선 것이다. 2004년 출범한 아시아건축연합은 동남아 7개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설계스튜디오와 세미나, 현장답사 등을 통하여 도시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풀며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중계본동 산 104번지에 위치한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1967년 서울 도심에서 철거당한 1135세대 주민들이 불암산 자락을 깎고 자리 잡은 마을이다. 당시 이들한테 주어진 것은 임야지 8평, 블록 200장과 4세대당 소형 텐트 1개씩이었다. 서울시에서는 시영버스를 하루 두 차례 운행하고, 공동우물을 파 줬을 뿐. 이들은 맨주먹으로 터를 잡아 집을 짓고 길을 냈다. 47년 동안 백사마을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묶여 집의 모양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입주 당시의 지번과 지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08년 그린벨트가 해제되며 재개발이 본격 추진되어, 현재는 대부분의 집들이 비어있다.

백사마을 재개발의 특징은 주민·자연 친화적이라는 점. 가옥주를 위한 고층아파트 지구 3분의 2, 세입자를 위한 임대형 단독주택 3분의 1 등 두 지역으로 나누어 개발되고 있다. 두 지역 사이에는 완충지대로 텃밭을 두어 두 지역 주민들이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살게 한다는 구상이다.
“그동안의 재개발은 깡그리 부수고 바꾸는 방식입니다. 이곳은 터에 새겨진 무늬, 즉 터무니를 살리자는 겁니다. 유네스코에서 만든 역사마을 보존의 원칙이 있는데, 지형, 필지, 길, 생활방식을 바꾸지 말 것 등 네가지를 제시합니다. 백사마을에도 그것을 그대로 적용하자는 거죠.” 백사마을 재개발 프로젝트의 커미셔너를 맡고 있는 승효상 건축가의 말이다. 그는 백사마을이 ‘핸드메이드 마을’이라면서, 그 안에 달동네의 역사와 주민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어 이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에는 재개발 마스터플랜을 맡은 두 건축가, 임재용, 이민아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임 건축가는 고층아파트지구, 이 건축가는 단독택지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임 건축가는 고층아파트 지역은 용적률 195%, 20층 규모의 아파트를 짓되 불암산 경관을 가리지 않도록 동 간 간격을 넓혔으며, 단독택지 지역과의 사이에 너비 20m의 텃밭을, 아파트 지역 전면에 테라스 하우스를 지어 두 지역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건축가는 “단독택지지역은 80m 차이가 나는 경사지에 380여개의 터가 자리 잡고 있다”면서 “지형에 새겨진 터와 길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설계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 터를 닦으면서 그에 대한 접근로를 만들어 터와 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골목길에서 이웃과의 관계가 맺어졌기 때문에 두 가지를 살린다면 주민들의 삶의 방식을 보전한다는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엔 북사면에 드는 햇볕을 공유하도록 배려했다. 그는 세대의 구성과 연령대가 다양하고 미세하게 빈부차가 있어 이를 반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워크숍에 참여한 홍콩대학교 건축학원 토마스 창 교수는 “한국에서 재개발의 결과는 비슷한 모양의 아파트군인데, 백사마을에서의 실험적 작업에서 고층과 저층이 어우러진 새로운 유형의 재개발 방식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국립대 건축과 샤에츠 플로리안 교수는 이번 재개발 방식이 일종의 타협안인데 “전체를 저밀도 저층 방식으로 하여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글·사진 임종업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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