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라지거나 해방되거나김상태 지음 책보세·2만2000원

일본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다. 50년 이상 일당독재가 계속되고 있고, 급속한 경제성장만큼 침체도 빠르고 깊다. 전쟁 때 그 어느 나라보다 잔학했다. 이 책 마지막 문장처럼 “고금을 통틀어 세상에 이런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이 책은 이런 일본을 이해해 보겠다는 시도다. 이미 수많은 책이 나와 있지만, 글쓴이의 주장은 명확하다. “일천년에 걸친 무사통치”를 빼면 일본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을 둘러싼 신비의 껍질을 깨는 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 번째 신화는 일본의 전쟁이다. 중일전쟁 초반까지 일본군은 불패였다. 그러나 필자는 일본군이 특별히 용감하지도, 뛰어나지도 않았다고 실증한다. 기습전과 단기전에 강했을 뿐, 정규전엔 항상 참패했다. 구슬처럼 부서진다고 했지만(옥쇄), 1945년 항복 뒤 자살한 일본군 장교는 독일 나치 장교와 그 숫자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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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정신력의 상징인 사무라이에 대해서도, 유례없는 ‘이념의 백치상태’라고 규정한다. 실제 일본 역사에서 사무라이의 의리와 충성은 오직 힘 있는 자에 대한 것이었다. 소련의 강제수용소에서 포로가 된 60만 일본 관동군이 앞다퉈 소련에 충성을 맹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책은 일본 역사에 대한 개괄로 나아간다. 일본인은 1192년 가마쿠라 막부가 들어선 이래 7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폐쇄적 무사정권이 이어졌다. 문치국가인 조선과 너무나 다르다. 문제는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이다. 보통은 입헌군주제로 무사통치를 벗어났다고 하지만, 글쓴이의 진단은 다르다. 메이지유신 자체가 하급 무사들의 작품으로 천황을 등에 업은 것을 빼면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필연적인 화학반응처럼 전쟁을 이어가야 했고, 태평양전쟁의 파멸까지 직선으로 내달렸다고 했다. 일본 근대의 본질은 “대외적 약탈과 침략, 대내적 무단통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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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말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전후 일본도 역시 무사통치가 이어진다는 도전적 주장을 펼친다. 200쪽 넘는 분량에 걸쳐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까지 이른 오늘의 일본을 다뤘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지나친 일반화는 아닌지 아슬아슬해 보이는 대목도 있다.

글쓴이는 자신이 일본 전문 연구가가 아니라고 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공부를 많이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대중적인 문체로 600여쪽이 한 호흡에 읽힌다. 무엇보다 인류 보편의 관점에서 일본을 고찰하려 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바로 그 자리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의 전반부에 임나일본부설을 둘러싼 남한 역사학계의 무기력과 비겁함을 두들기는 대목은 호쾌하다. 사학계의 대답이 듣고 싶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