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궁궐의 그림> 박정혜 외 3인 지음/돌베개·3만3000원
이 빛바랜 기념사진 한장은 우리를 구한말 궁중그림의 뒤안길로 이끈다. 1906년 서울 종로에서 시전을 경영한 주인섭이라는 상인이 부인의 회갑날 가족들과 찍은 것이다. 사진 중앙에 단령 입고 사모를 쓴 나이 든 인물이 바로 주인섭이고, 두 부인이 양옆에 자리를 함께했다. 화관에 원삼 입은 아이들, 뒤편에 선 수려한 용모의 남녀 가족들 자태에서 상류층 집안임을 알 수 있다.
주목되는 건 사진 속 뒤편에 놓인 두 점의 병풍들. 연지와 누각이 등장하고 2~3명이 누각 안에서 바둑을 두는 장면이 나오는 왼쪽 그림은 ‘곽분양행락도’라는 부귀·장수를 비는 그림이며, 구름이 희끗 드러난 오른쪽 병풍은 장수를 비는 ‘십장생도’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의 윤진영 연구원은 사진의 주인공 주인섭의 행적을 당시 이 지전의 신문광고 등을 뒤지며 추적했다. 오랜 추적 끝에 그가 19세기 말 무반 관직에 올랐다가, 지전 상인으로 전업한 유한층이며, 사진 뒤편 병풍과 같은 그림이 미국 오리건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음을 밝혀냈다. 궁중그림이 구한말 국권 쇠망기 민간으로 흘러나와 거래됐음을 일러주는 유력한 증거가 포착된 것이다. 박정혜 한중연 교수의 연구팀과 그가 공동 집필한 <조선 궁궐의 그림>에서 이 흥미진진한 주인섭의 사진 내력과 조선시대 최대 그림 컬렉션이었던 왕실 소장 궁중화들의 다양한 장르들과 곡절 많은 변천사를 만나게 된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돌베개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