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우천왕기 전 6권>
이우혁 지음/엘릭시르·각 권 1만4000원
역사 판타지는 독자의 이중구속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장르 같다. 작가가 독자에게 상반된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것이다. 역사소설이라는 측면에서는 고증을 바탕으로 한 사실성을 중시하되, 판타지라는 면에서는 현재의 자연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을 현실에 중첩된 새로운 공간 안에 배치하여 사실성과 거리를 둔다.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는 재구성된 역사를 감상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작가의 상상력이 세운 허구의 세계임을 인식하며 갈등한다. 그런데 한편 독자는 이 갈등에서 독서의 재미를 느낀다. 이우혁의 <치우천왕기>(엘릭시르)가 독자에게 바라는 태도도 이와 비슷하다.
이전에 출간된 책들을 수정하고 결말을 더하여 6권으로 완간된 <치우천왕기>의 첫머리에는 2003년 당시의 발간사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작가는 ‘역사’와 ‘판타지’ 둘 다를 포함하는 창작 의도를 내비친다. <치우천왕기>가 “우리가 이제까지 갖지 못한 영웅 신화”의 역할을 하여 역사인식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작가가 그동안 구축해왔던 한국형 판타지 세계의 일부로 읽어주기를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반된 요구에 대응하는 독자의 선택은 다양하겠지만, 결국 이런 갈등은 이야기 속에서 해소할 수밖에 없다.
<치우천왕기>는 한국 축구 서포터 팀의 상징인 붉은 악마의 이미지로 유명한 군신 치우천왕에 대한 짤막한 역사적 기록을 확장하여 만들어낸 소설이다. 작품의 배경은 기원전 2700년쯤, 동북아시아 지방에 있었다고 하는 주신국이다. 희네와 나래, 후에 치우천과 치우비가 되는 쌍둥이 형제가 한민족의 근원으로 설정한 주신국의 지배자가 되고 중국의 원형인 지나족과 전투를 벌이며 국가 개념을 확립해가는 과정이 묘사된다. 긴 이야기를 몇 줄로 요약하니 단순한 민족주의 서사로 비약될 위험이 있지만, 이 소설은 서사 공학적 원형에 충실한 작품이다. 쌍둥이 영웅은 지혜와 용맹이라는 상보적인 특성을 통해 대별된다. 형제의 연애담은 전체 줄거리와 맞물리며 사건을 유발하지만 이로 인해 소설에 애틋한 정서가 더해지기도 한다. 여러 부족을 대표하는 인물들은 개성적으로 묘사되고 신수라고 일컬어지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판타지의 세계를 완성한다.

역사적 엄밀성은 차후의 논제로 남겨두고 보면, <치우천왕기>를 관통하는 가치는 다양성으로 요약된다. 치우천왕과 지나족의 황제 헌원이 대립하게 된 원인도 다양성에 대한 관점의 차이였다. 치우천은 당시에 동북아시아에 거주했던 아시아 민족은 물론, 생김새가 달라 도깨비라고 여겼던 서양의 이민족들까지도 수용하는 정책을 편다. 모든 소수민족을 하나로 묶어 강압적으로 동화하려는 헌원과는 대립 각을 세우는 부분이다. 다양성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건 기묘한 역설일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에는 잘 어울린다. 일견 대립되는 요소들을 하나로 아울러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치우천왕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번역가·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