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을 만난 진융(왼쪽). 덩샤오핑의 진융 무협소설의 열혈독자였다.
1981년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을 만난 진융(왼쪽). 덩샤오핑의 진융 무협소설의 열혈독자였다.
광고

〈의천도룡기 전 8권〉진융(김용) 지음·임홍빈 옮김/각 권 9500원

이제나 저제나 ‘김 대협’(진융)의 비급을 떳떳하게 입수하길 학수고대하던 강호의 무협 독자들이 환호성을 울린 것은 2003년이 저물어 갈 무렵 <사조영웅전>의 정식 출간 때였다. 그러나 비급의 첫 권인 <사조영웅전>과 그로부터 2년 뒤인 2005년에 나온 <신조협려>는 강호 고수들을 적잖이 실망시켰다. 번역의 문제가 지적되었고, 출간 간격도 다소 길었다. 그러나 무협 독자들은 김 대협의 작품이 정식 계약을 통해 떳떳하게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고 ‘사조삼부곡’의 마지막 작품인 <의천도룡기>를 기다렸다.(<의천도룡기>를 포함해 ‘사조삼부곡’은 20여년 전 정식 계약을 맺지 않고 ‘영웅문’ 등의 이름으로 무단 출간된 바 있다. 서툰 번역이 온전한 감상을 방해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광고

그리고 마침내 2007년 10월 청명한 <의천도룡기>가 강호에 출현했고, 강호 고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다. 무게감 있는 번역에다 친절한 주석까지 딸려 있어 독자들은 한결 품격 있게 절정에 이른 김 대협의 비급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진융(김용)은 85살의 고령이다. 1972년 <녹정기>를 끝으로 더는 무협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작품 활동은 중단했지만 그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통해 늘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광고
광고

진융은 20대부터 주로 신문과 잡지 일을 했고, 29살 때 아버지가 정치적인 문제로 총살당한 이후 홍콩에 정착하여 주로 신문 일을 하면서 영화평을 쓰기도 하고 한 때는 영화 감독을 하기도 했다. 33살부터 신문에 무협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양우생과 함께 무림계를 양분하며 명성을 얻었다.

37살 때 <밍바오>(명보)라는 신문을 직접 창간한 진융은 낮에는 정치 평론을 쓰고 밤에는 무협소설을 쓰는 이중생활로 접어들었다.(창간호부터 <신조협려>가 연재되었다.) 그저 신문의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쓰기 시작한 그의 무협소설은 홍콩·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미국 등등 중국인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대만 장제스 정권에 의해 판매금지를 당하기도 했고, 대륙에서는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금지시켰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극좌파에 의해 암살대상으로 지목되어 싱가포르로 피신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는 쉼 없이 무협소설을 썼고, 무림의 열화와 같은 반응과 추앙을 통해 그는 무림을 완전 평정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그의 무협소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김학(金學)’이라는 학문 분야까지 생겨났다.

광고

그의 작품은 우선 중국의 역사와 문화라는 탄탄한 기반 위에서 전개된다. 그래서인지 중국인들은 그의 무협소설을 ‘중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텍스트’라고 말한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 다채롭고 웅건한 스토리 구성과 배치는 무협소설의 격을 한 단계 높이고 있다. 여기에 역사적 사실을 절묘하게 배합함으로써 ‘무협+역사’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총 15부에 이르는 진융의 무협소설 중에서도 ‘사조삼부곡’은 양이나 스케일 면에서 다른 작품들을 압도한다. 작품의 질 또한 절정에 이르러 김 대협의 변화막측한 절기가 독자들을 숨막히게 한다. 특히 이번에 출간된 삼부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의천도룡기>에는 남녀간의 애정, 부모 자식간의 정, 사제기간의 정, 친구간의 의리와 우정 등 인간 세상사에 나타는 거의 모든 ‘정(情)’이 복잡다단하게 표출되고 있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 작품에서 진융은 무협소설의 핵심을 구성하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던 정(正)과 사(邪)에 대한 관점에 의문을 던지고 있으며, 늘 피비린내 나는 복수와 비극적 결말이라는 기존의 스토리에서 벗어나 단 한 사람의 원수도 죽이지 않는 의외의 결말을 택함으로써 독자들의 무릎을 치게 만든다.

바야흐로 대권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금 현실의 무림 세계는 의천검을 가진 ‘의인(義人)’을 애타게 갈망하고 있다. 과연 누가 ‘의천검’을 갖고 있을까?

김영수/중국 전문 저술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