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년 3월31일
1814년 3월31일

나폴레옹-야망과 운명프랭크 매클린 지음, 조행복 옮김교양인·3만8000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혁명의 계승자였나, 아니면 파괴자였나? 그는 왜 굳이 황제가 되려 했을까? 나폴레옹이 그의 시대를 만들었나, 아니면 시대가 그를 만들었나?

“나폴레옹에 관한 모든 것은 자체의 역설을 낳는다. 한편으로 나폴레옹은 그 전쟁의 혼란스러운 충격으로 한 세대 동안 유럽 경제에 퇴보를 가져온 사람으로 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봉건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마지막 승리를 확보하고 막 탄생한 프랑스 산업을 영국의 강력한 경쟁으로부터 보호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영국 왕립 역사학회와 지리학회 회원인 역사가요 저널리스트 프랭크 매클린은 저서 <나폴레옹>(Napolen: A Biography, 1997)에서 프랑스 혁명 발발 5년 만인 1794년 7월 로베스피에르 형제와 자코뱅 지도자들을 처형한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프랑스 혁명은 이름만 남긴 채 사실상 끝나버렸다”고 얘기한다. 나폴레옹은 그 전해인 1793년 프랑스 해군 조병창이 있던 지중해 항구도시 툴롱의 반혁명세력들이 끌어들인 영국-에스파냐 함대를 격파한 툴롱 전투로 프랑스 사회에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는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의 동생 오귀스탱 로베스피에르의 친구였고, 그 자신 자코뱅 당원이었다. 툴롱 전투는 반혁명파와 외부 개입세력에 의해 치명타를 입었을지도 모를 당시의 자코뱅 주도 혁명을 위기에서 구했다. 테르미도르 반동 직후 로베스피에르파 혐의로 한때 구속당하기도 한 나폴레옹은 그 ‘반동’에 처음부터 가담하진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거기에 편승했다.

프랑스 혁명을 진짜 끝장낸 것은 그 5년 뒤인 1799년 나폴레옹이 총재정부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제1통령으로 전권을 장악한 ‘브뤼메르(안개달) 18일’ 쿠데타라는 주장도 많다. 하지만 매클린은 이 사건도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나폴레옹은 그때 사유재산권 보장을 최고의 가치로 채택함으로써 총재정부 때 권력과 부를 장악한 부르주아 세력의 기득권을 확인해주고, 급진 자코뱅과 부르봉 왕조의 부활을 꿈꾸는 왕당파 양쪽의 국민적 대표성을 박탈했다. 따라서 이 쿠데타를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부르주아 혁명의 연속성 확보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쿠데타가 다시 5년 뒤인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가 돼 제정시대를 여는 데 ‘도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부르주아 혁명 자체를 끝장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뒤의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파괴·비참과 함께 전파하고 확장한 반봉건적 가치는 또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그가 황제 자리에 올랐을 때 바이런, 베토벤 등은 절망했지만 부르봉 왕가 복귀를 두려워하던 부르주아, 심지어 자코뱅까지 안도했다고 매클린은 썼다.

1769년 8월15일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나 프랑스 혁명의 총아가 되고 황제 자리에까지 오른 뒤 1815년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최종 유배될 때까지 유럽 대륙을 석권하면서 20년간 세계를 뒤흔들다 1821년에 사망한 ‘나폴레옹의 모든 것’을 담으려 한 전기물 <나폴레옹>. 어린 시절부터 그의 출세와 몰락 과정, 복잡한 가족관계, 여성 편력까지 세세하게 추적하면서 심리학적 분석까지 시도한 1천쪽이 훨씬 넘는 분량의 이 책은 그런 문제들을 새롭게 들여다보고 생각할 수 있는 풍부한 재료들을 담고 있다.

저자 자신이 새로운 사실의 발굴보다는 “이 비범한 거인에 관한 기존 지식을 명쾌하게 종합하는 온건한 과제” 수행을 목표로 내걸었다고 밝힌 이 책은, 특히 디테일 풍성한 그 재료들 덕에 저자가 인용한 칼 융의 ‘에난티오드로미아’(enantiodromia, 대극의 반전. 어떤 힘이 과도해지면 그 반작용 또한 강해지는 자연계 균형 원리) 개념의 효용성을 실감하게 한다. “칼 융은 ‘번개 같은 개종’은 좀체 없다고 경고했고, 나아가 사울이 바울로로 바뀐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에난티오드로미아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견해에 다르면 사울이 바울로 바뀐 이유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빛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조금씩 분명하게 밝아오던 과정이 빛을 봄으로써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지배에서 벗어나려던 열렬한 코르시카 민족주의자 나폴레옹이 왜 프랑스 혁명에 뛰어들었던가, 왜 테르미도르 반동에 편승하고 브뤼메르 쿠데타를 일으키고 황제가 됐나, 왜 굳이 러시아 원정을 강행했나? 그건 맥락 없는 돌출사건이 아니라 그 전사(前史)들, 질적 변화를 위한 사건의 축적, 즉 에난티오드로미아적 과정이 있었음을 책은 잘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브뤼메르 쿠데타 때 수혜자가 된 이들은 그 5년 전 혁명적 군중의 시대를 끝장낸 테르미도르 반동 때의 수혜자인 지주, 군수품이나 아시냐(당시 통화) 투기꾼들, 전매품을 대량 매점하거나 몰수된 교회와 망명 귀족 부동산 등 이른바 ‘국유재산’을 싼값에 사들여 떼돈을 번 이 등 유산자들의 후예, 즉 ‘신 테르미도르파’의 일파였다. 그런 과정은 4·19혁명 뒤의 5·16, ‘87년 체제’와 김대중·노무현 정권, 그 뒤의 이명박·박근혜 정권 등이 그려온 진보와 반동의 나선형적 반복과도 닮았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