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대표팀이 숙적 일본에 설욕할 기회를 아쉽게 놓쳤다.
김정훈 감독이 이끄는 북한은 17일 중국 충칭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08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개막일 경기에서 재일교포 공격수 정대세의 선제골로 앞서 갔지만 후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마에다 료이치에게 동점골을 내줘 일본과 1-1로 비겼다.
개막전에서 개최국 중국을 3-2로 누른 한국은 4개국이 풀리그로 우승컵을 다투는 이 대회 1차전에서 유일하게 승점 3점을 챙겨 단독 선두로 나섰다. 북한과 일본은 나란히 승점 1점을 챙기는 데 그쳤다.
지난 6일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1차전 원정경기에서 중동의 난적 요르단을 1-0으로 누른 북한은 무서운 상승세를 살려 '대어'를 낚을 뻔했지만 후반 체력 저하와 골키퍼 실책으로 결승골을 지키지 못했다.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일본에 뼈아픈 패배를 당했던 북한은 10년 만에 일본을 꺾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일본프로축구 J리그 강호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뛰는 정대세가 원톱으로 나섰고 문인국, 박남철이 좌우에 포진한 뒤 K-리그 수원 삼성의 안영학이 중앙 미드필더를 맡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5위 일본이 북한(FIFA 랭킹 120위)에 우세할 것으로 예상된 경기였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반대였다.
전반 5분 만에 북한의 선제골이 터졌다.
주인공은 공격의 핵 정대세.
탄탄한 체격과 개인기, 스피드를 겸비한 정대세는 중원에서 스루패스가 전해지자 볼을 잡고 유연하게 돌아선 뒤 아크 뒤에서 일본 수비진의 혼을 뺐다.
수비수 두 명을 제쳐낸 뒤 마지막 수비까지 교란하며 한 박자 빠른 왼발 슛을 쏘았고 속도가 붙은 땅볼 슛은 일본 골문 왼쪽 구석을 꿰뚫고 들어가 골망을 흔들었다.
북한은 정대세가 헛다리짚기 드리블로 여러 차례 수비진을 흔들며 공격을 주도했다.
오카다 다케시 감독이 이끄는 국내파 중심의 일본은 전반 40분 북한 골키퍼 리명국이 골문을 비운 상태에서 나카자와의 헤딩슛이 골문으로 향했지만 한성철이 결정적인 헤딩으로 선방해냈다.
후반 5분 정대세의 가위차기 슛이 다시 일본 수비진을 괴롭혔다. 오카다 감독은 교체 카드를 빼들었고 조커로 투입된 마에다가 위기의 일본을 구해냈다.
마에다는 후반 24분 리명국이 왼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펀칭한다는 게 제대로 쳐내지 못하자 골문으로 달려들며 가볍게 헤딩으로 동점골을 터트렸다.
북한은 정대세가 막판에 다시 수비진을 휘저으며 회심의 슈팅을 때렸지만 크로스바를 넘었다.
한편 이날 충칭 올림픽스포츠센터에 온 중국 관중은 반일 감정 때문인지 일방적으로 북한을 응원했다. 관중석 곳곳엔 인공기가 휘날렸고 '조선, 필승' 등의 플래카드도 내걸렸다.

배진남 기자 hosu1@yna.co.kr (충칭<중국>=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