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내내 야유를 퍼붓던 '치우미(球迷)'도 결국 3-2 펠레 스코어를 이끌어내며 짜릿한 승리를 챙긴 태극전사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17일 오후 중국 충칭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펼쳐진 2008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한국과 중국의 개막전.
이날 경기는 30년 공한증 해소에 나선 중국 대표팀의 일전이었던 만큼 5만8천여 입장권이 매진사례를 이뤘지만 오전부터 충칭에 이슬비가 흩뿌리고 하루 종일 도시 전체에 안개가 꼈기 때문인지 관중석 곳곳에는 빈 자리가 많았다.
그래도 3만5천여 중국 축구팬 치우미는 오성홍기를 흔들고 북과 나팔을 동원해 열띤 응원을 펼쳤다. 본부석 오른쪽 골대 뒤편에 자리잡은 한국 응원단 50여명의 목소리는 이들의 함성에 묻히고 말았다.
치우미의 일방적인 응원은 곧 태극전사들에 대한 야유였다. 전반 시작과 동시에 수비수 순시앙이 한국의 프리킥 찬스 때 거친 몸싸움을 벌이다 경고를 받자 이들은 한국 선수들과 심판에게 거침없이 야유를 퍼부었다.
한국 선수가 실수를 하면 비웃음이 터져나왔고, 중국 선수가 어이없이 넘어지는 상황에서는 격려의 환호성을 보냈다.
치우미는 특히 후반 들어 중국이 두 골을 넣으며 역전에 성공하자 그야말로 광적으로 변했고 쉴 새 없이 파도타기 응원을 펼치며 기세를 높였다.
하지만 박주영(FC 서울)의 프리킥 동점골에 경기 종료 직전 곽태휘(전남 드래곤즈)의 결승골까지 나오며 공한증 타파에 실패한 뒤 관중석은 조용해졌다. 꿋꿋이 응원을 펴던 붉은 악마의 '힘 내라 한국', '대~한민국' 구호가 경기장을 감싸는 순간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중국 축구팬은 당연히 실망할 법한 분위기였지만 한국을 상대로 그나마 대등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인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치우미는 퇴장하는 중국 선수들을 변함없이 격려했고, 심지어 태극전사에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승패를 떠나 짜릿한 경기를 보여준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이었고, 공한증을 조만간 이겨낼 수 있다는 기대의 표출인 것처럼 보였다.

배진남 기자 hosu1@yna.co.kr (충칭<중국>=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