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피해!”
26일 오후 3시20분께 연평도 전체가 갑자기 혼란에 휩싸였다. 텔레비전에서 포성이 울렸다는 긴급보도가 쏟아졌다. 섬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포성을 듣지 못했지만, 대피하라는 누군가의 외침에 연평면사무소 인근에 있던 기자들은 가까운 초등학교 대피소로 내달렸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사실 확인을 하느라 전화기를 붙잡고 목소리를 높였고, 여기저기서 전화벨이 정신없이 울렸다. 인천으로 가지 않은 주민 39명 가운데 일부도 급히 대피소로 들어가 공포에 몸을 떨었다. 북한 쪽 개머리 지역에서 섬광이 보였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섬은 사흘 전 악몽이 되풀이될까봐 잔뜩 움츠렸다.
머잖아 북한의 자체 훈련이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딱딱한 표정은 좀체 풀리지 않았다. 간신히 안정을 되찾던 섬이 순식간에 냉각된 것이다. 한 공무원은 “보통은 자주 있는 일인데, 사흘 전 포격 때문에 다들 긴장한 것 같다”며 “실제 포탄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가까이 오면 포성이 명확하게 울리고 창문이 흔들린다”고 말했다.
28일 실시되는 서해 한-미 군사훈련을 앞두고 연평도는 작은 소리 하나에도 크게 동요할 정도로 긴장감이 가득했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일부 주민들은 이날 오전 여객선을 타고 섬을 떠났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원세환(57)씨는 “기름을 공급하느라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나가야 할 것 같다”며 “포격이 있던 날 공사현장에서 숨진 분들을 오전에 만났는데 그렇게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7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여기에 있고 싶었는데 버티다 버티다 나간다. 먼저 나간 식구들이 하도 걱정을 많이 해 나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며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연평면사무소는 이날 아침까지 대연평도와 소연평도에 47명의 주민이 있다고 밝혔지만, 여객선이 한 차례 인천을 향해 떠난 뒤에는 39명만이 남게 됐다. 관공서 직원과 복구 인원이 58명으로, 주민보다 많아졌다.
주민들이 떠난 섬에서 면사무소 공무원과 행정안전부 직원, 감정평가사 등 10여명은 골목을 누비며 복구 작업을 위해 주택 파손 상태 등을 꼼꼼히 점검했다. 인천에 머물고 있는 주민들 사이에서 “도둑이 있다”는 소문이 돌자, 경찰도 순찰을 강화했다. 이날 섬에 들어온 라디오방송 <피아르아이>(PRI)의 미국인 프리랜서 제이슨 스트로더는 사진기와 녹음기에 황량한 거리 모습을 담느라 분주했다. 한국에 온 지 4년이 됐다는 그는 “많은 기자들이 한국에 올 때 남북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막상 일이 터지고 나니 충격스럽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미처 가지고 나오지 못한 물건을 찾아 나선 주민도 만날 수 있었다. 서부리 골목에선 박연수(87)씨가 뒷짐을 진 채로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포격이 있던 날 어선을 타고 인천으로 나갔다가 이날 오전에 섬으로 다시 돌아온 터였다. “신발을 바꿔 신어야 하고, 포격으로 무너진 집도 봐야 하고….” 자주색 점퍼와 검은색 양복바지 차림의 그는 발목에 털이 달린 파란색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박씨의 집 앞마당에는 포격의 흔적이 뚜렷했다. 집 현관문과 유리문은 모두 날아갔고, 집 안은 유리조각으로 가득했다. 박씨는 인천으로 떠나는 배를 놓치지 않으려고 황급히 신발을 갈아 신고, 집 한구석에 있던 구두도 챙겨 들었다.
한국전쟁 때 황해도 옹진에서 피난을 온 박씨는 이번이 생애 두번째 피난이다. “허~, 참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어. 또 피난길이라니….”
연평도/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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